법원이 판결문을 선별해 공개함으로써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거론되는 고위법관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자료로서의 하급심 판결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법원 스스로 중요하다고 본 대법원 판결문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참여연대가발간한사법감시제27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한상희)는 법원의 공식적인 판결문 공개방법 중 가장 많은 판결문을 찾아볼 수 있는 ‘법고을 LX’시스템을 기준으로 판결문 공개실태 조사결과를 수록한 ‘사법감시’ 제27호를 5일 발행했다.
참여연대는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지방법원장 및 고등법원장 전원과 고법부장판사 등 법관재직기간 평균 27.4년인 고위법관 28명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위해 필요한 하급심 판결문 공개를 조사한 결과, 1인당 겨우 18건의 하급심 판결문만 공개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 고위법관 중 40건 이상의 판결문이 공개된 경우는 단 1명도 없었고, 31∼40건이 2명, 21∼30건이 7명, 11∼20건이 14명, 10건 이하도 5명에 달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고위법관 재직기간 27.4년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공개수치는 1년에 1건의 판결문도 공개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이후 임명된 7명의 현직 대법관들의 하급심 판결문 공개실태 조사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공개된 판결문은 고현철·양승태 대법관이 11건으로 가장 많았고, 김용담ㆍ김지형 대법관이 10건, 김황식ㆍ깅영란 대법관이 8건, 박시환 대법관이 5건으로 평균 9건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한상희 소장은 “이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후보자 등 고위법관의 하급심 판결내용을 근거로 국회 인산청문이나 시민사회의 평가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고위법관 임명과정의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충하기 위해 즉 사법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하급심 판결문의 공개확대는 필수적이며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법원이나 법관들 스스로 중요하다고 판단해 논문 대상으로 삼고 있는 판결문조차도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참여연대는 법원도서관이 2002년 상반기부터 2004년 상반기까지 발행한 ‘대법원판례해설’에서 논문대상이 된 대법원 판결 중 법원이 공개하는 ‘법고을LX’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미공개 판결은 42건이나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재판연구관들의 세미나 자료로서 논문의 대상이 될 만한 대법원판례해석에 수록될 판결이라면 의미가 결코 적지 않을텐데 다수의 대법원 판결들이 공개되지 않는 것은 법원이 공개할 판결을 선택하는 공개시스템 자체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그러면서 “법원이 판결문을 선별해 공개할 어떤 명분도 없다”면서 “법원이 공개할 판결을 선정하고 공개하는 현재의 방식을 모든 판결문을 일반적으로 공개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검색해 판결문을 구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도 “하나의 판결은 검사 또는 변호사들이 다양한 실제 사건 속에서 선례로 인용하면서 판례로서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법원이 수많은 판결 중에서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내 공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개인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판결문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것 같지만 개별적으로 비실명 처리한다면 공개가 가능하다”며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평가를 위해서도 사법활동의 결과물인 판결문이 공개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