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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더라인] HWP를 탈출하라

‘장식적 워드 프로세서’가 발목 잡는 한국 사회

기사입력 : 2017.10.18 16:03 (최종수정 2017.10.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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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부쩍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다. 업무시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지에서 사회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크게 보아 ‘한글과 컴퓨터 권역’과 ‘마이크로소프트 권역’으로 나뉘는 것 같다. 말하자면 ‘한컴권역’은 hwp를 사용하는 이들의 영역이다. ‘MS권역’은 MS WORD와 EXEL과 PDF와 PPT 등을 사용하는 이들의 영역이다.

그런데 hwp는 너무나도 문제가 많은 파일 포맷이라 한다. IT업계 사람들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환경을 상정하고 설계된 파일 포멧인데다가 문서 형식 전파에 실패한 탓에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한다. 즉 프로그램적으로 다른 서비스가 한글 파일을 읽고 쓰는 기능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docx나 odf 파일은 스마트폰 앱이나 검색엔진이 내용을 읽어들여서 자동처리할 수 있지만, hwp는 그럴 수 없다. 한글과 컴퓨터도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나름 이 문제에 대해 노력을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오늘날 한글 파일의 자동 처리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MS WORD의 과거 doc 포맷이 docx로 변화한 것은 이러한 처리를 염두에 두고 재설계한 것이다. 그들 역시 처음부터 완벽한 상호운용성을 구현했던 것이 아니다. 또 다른 표준인 ODF 역시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그러는 동안 한컴은 사실상 공기업처럼 정부 기관의 소프트웨어를 독점한 채 혁신에 실패했다. 2010년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정부 기관에 ODF 사용을 권고하는 등 국제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글파일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었지만 아직도 ‘한컴권역’은 굳건하다. 왜일까.

관찰한 바 ‘한컴권역’은 한국 사회 권력의 최상층과 최하층에 분포한다. 혼자서 문서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을’들에게 자신이 쓰는 문서 양식를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갑 중 갑’들이 사용한다. 관공서, 공기업, 국책은행 등이다. 이들이 hwp를 사용하는 이유 중엔 애국심이란 요소도 있다. 한컴은 우리 기업이며, 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해외기업과 투쟁해온 이들이란 인식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ODF를 통해 국제표준적 기능을 준수하면서도 문서주권과 효율성을 지키기 위해 MS에 맞서는 중이란 점을 환기하면, 한컴에 대한 이들의 애국심은 시대착오이며 문화지체다. 다른 국내기업이 국제표준을 맞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조차 사실상 막고 있으니 불공정한데다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당연히 ‘MS권역’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혀를 끌끌 찬다. 이들은 업무 효율을 위해선 MS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도, 관공서나 공기업이나 국책은행 등과 거래할 경우 이들과 협업하기 위해 해당 작업에 대해 hwp 버전을 만드는 이중업무를 해야 한다.

여의도 정가, 기자사회, 출판계 등도 대체로 ‘한컴권역’에 위치한다. 보도자료는 주로 hwp로 뿌려진다. 업무시 카카오톡을 통해 hwp 문서가 수없이 오간다. 카카오톡으로 한글문서를 열람하지 못하는 이가 있을 경우 메일로 전송한다. 정보보고 문건 정도가 PDF인 정도다. 경험상 기업에 전달되는 문건일수록 PDF나 PPT일 경우가 많았다.

출판사의 경우 규모가 조금 커지면 내부에선 MS 프로그램을 사용하지만, 저자들이 주로 hwp로 원고를 보내기 때문에 편집자들이 이중 작업을 하곤 한다. 영세한 출판사의 경우 반대로 IT 기술에 친화적인 저자가 MS WORD로 문서를 보낼 경우 편집자 쪽에서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권력 관계의 최하층, 혼자서 작업하는 이들이 hwp를 선호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혼자 작업하는 이들은 hwp의 불편함을 알기 어렵고, 컴퓨터를 처음 사용할 때부터 사용한 이 프로그램을 그저 쓸 뿐이다. 예쁜 편집 매무새가 글쓴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한다. 언론과 출판사에 대해 명목상으로는 ‘갑’인 저자와 필자들의 상당수가 이 프로그램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받는 이들의 입장에선 hwp의 편집이 무가치할 뿐더러 해악이다. 대부분의 언론사 집배신 시스템에서 한글파일의 편집은 계륵이다. 원고 담당자들은 습관적으로 hwp의 텍스트를 메모장에 붙여 넣기 한 후 메모장 텍스트를 복사해 와서 편집을 시작한다. 실은 개인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고만 해도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친다. 한글 편집을 거친 텍스트를 긁어다 붙이면 이상한 코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HTML 태그로 새로 명령을 내려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넌더리를 내는 어떤 이들은 “hwp로 줄 바에야 차라리 메일 본문에 텍스트 붙여넣기 해서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적 권력 관계의 최상층, 관공서와 공기업과 국책은행 등에서 hwp를 선호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애국심의 문제도 있지만, 그 위에 한국 사회 특유의 조직문화가 포개진다. “결정권자가 보기에 예뻐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hwp는 ‘장식적 워드 프로세서’인 셈이다!

이 상황엔 몇 가지 맥락이 포개진다. 첫째, 저 영역에 있는 한국 사회 대부분의 결정권자들은 실무를 하지 않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워드 프로세서조차 잘 사용하지 않고 출력물을 보고 지시를 내린다. 둘째, 그렇기에 실무를 하는 이들의 편의가 최우선 가치가 아니다. (한글 편집에 능숙한) ‘한글 도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hwp가 업무 효율성을 갉아먹는 프로그램이란 걸 증명하지만, 10의 노력을 들여 70의 장식을 구현하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100의 노력을 들여 100의 장식을 구현하는 hwp가 선호된다. 그럼에도 업무 효율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기에 결국 이들을 위해 이중작업을 하는 이들이 생긴다.

결국 hwp와 ‘한컴권역’이 유지되는 현상은 한국 기업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단 한국 사회 비효율성의 어두운 단면인 셈이다. 그렇지만 ‘한컴권역’이 미래에도 철옹성일 것 같지는 않다. 점점 문서작업에서 협업의 필요성과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협업의 세계에서 한컴은 갈라파고스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다. 가장 대중적인 클라우드인 구글 드라이브만 봐도, 구글이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은 MS 것에 흡사하다. MS와 구글은 쉽게 호환이 되지만 한컴은 그렇지 않다. 물론 국내 기업 서비스인 네이버의 N드라이브 등에선 hwp도 잘 구동되지만, “hwp를 받아 안을 서비스를 찾아 헤매지 말고 hwp를 버려라”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적폐청산이 화두인 시대다. 어쩌면 hwp는 이 영역에서의 적폐일 것이고, 이 ‘장식적 워드 프로세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사회 문화 자체가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일 것이다. 최근에는 여러 대선주자들이 거듭 철폐를 약속한 저 악명 높은 ‘액티브엑스’도 hwp와 함께 묶여 있어 없애기 어려운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결국 ‘한컴권역’이 어떤 식으로 사라질 것인지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점치는 지표가 될는지도 모른다. 먼저 hwp에서 탈출한 개인이나 조직의 성과가 널리 공유되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4차산업혁명이란 식의 거대한 의제들도 이와 같은 구체 수준으로 내려와 언어화되어야 한다. 혁명을 말하기 전, hwp부터 탈출해보자.

(하지만 관성을 한 번에 떨칠 수는 없었다. 필자는 이 글을 hwp로 작성했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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