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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더라인] ‘주한미군 철수’ 검색어 순위가 보여주는 것은?

‘해석자’가 못하고 ‘뇌내망상’ 재료 공급하는 한국 언론의 초상

기사입력 : 2017.08.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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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 금요일 갑자기 한국의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로 ‘주한미군 철수’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알려진 백악관 수석전략가 및 선임고문 스티븐 배넌이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였다.

배넌은 며칠 후 경질되었고 자신의 직함 앞에 ‘전’자를 달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배넌의 직책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거론하며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를 드러냈다고 해석하기에 급급했다.

그리 해석한 이유를 추론하기는 어렵지 않다. 해당 기사의 조회수를 올리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줄줄이 따서 ‘현실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라고 끝나는 문단을 적은 후, 마지막 문단에 ‘하지만 일각에서는 (...) 배넌의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 내지 미국 일각의 모종의 속내를 드러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는 식으로 덧붙이면 된다.


누리꾼들이 흔히 말하는 ‘낚시’ 기사의 완성이다. 사실 이런 형식은 ‘낚시’치고는 가장 재미가 없고 제법 세련된 형태다. 사실관계가 잘못된 건 아니기에 항의할 수도 없다. 여기서 배넌 발언의 진실은 ‘미국 일각의 모종의 속내’에 가깝지만, 저렇게 병렬해서 붙여놓으면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로 읽히기 쉽다. 이런 경우는 기자들에게 물어봐도 “배넌 발언 그거 뭐 무슨 의미있겠어?”라고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기사는 수십 건이 나온다.

특히 외신 인용 기사에 있어서 이제 국내 언론의 공신력은 시민들 사이에선 이미 바닥이다. 큰 틀에서 보면 국내 기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기레기’를 욕한다. 물론 개별 사안에 따라선 기자 개인의 인성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희소한 경우다. 보통은 매체 환경의 문제이고 기자 개개인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부분에 가깝다. 혹자는 맞춤법 지적하면서 ‘이건 개인의 문제 아니냐’고 하겠지만 한 시간에 여덟 개씩 기사를 작성하는 온라인 매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이 역시 그렇게만 말하기는 힘들다.

나는 국제외교나 미국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섬세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배넌의 발언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소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을 때 심각한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한다. 이미 저 수십 건의 기사 안에서도 확인된 바다. 그러나 저렇게 보도된 상황에서 배넌의 발언은 각종 ‘뇌내망상’의 ‘재료’로 활용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회자된 ‘포스트 트루스’, 이른바 ‘탈진실’은 남한의 웹에선 이미 존재하는 조류였다. 보수적 시민들은 이 기사들을 보고 ‘문재인 정부의 종북 외교정책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미국으로부터 버림받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해석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의 시민들은 이 기사들을 보고 ‘미국은 역시 한국을 위해 주둔하는 게 아니라 제 국익을 위해 주둔한다. 미국 시민이 위험할 수 있다 싶으니 곧바로 철수 운운한다. 이참에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방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가 18일 웹에서 상위 검색어가 된 맥락은 이 두 시민 세력의 적극적 합작 검색일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남한에서도 ‘자생적 핵무장’이니 ‘전술핵 배치’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전자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말하는 바요, 후자는 무려 바른정당의 당론이다. 지난 민주정부의 각료 출신이나 문재인 정부의 조언자들 중에선 한국이 친미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탈피해 사실상 친중 성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암시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통치자의 자의성이 미국보다 더 강한 사회에서도 이런 종류의 ‘생각’들은 체제에 가로막힌다. 이를테면 외교부 관료들의 역량과 업무처리 방식, 또는 관성에 의해 제어된다.

애초 현 시점 대북정책에 관해 선택지가 많지 않은 한국의 정가에서 떠도는 ‘아무 말’이 의미를 지니는 경우는 미국 정가에 전해져서 ‘한국인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가 그들을 지켜줄 필요가 있는가’라고 비분강개하는 용도로 쓰일 때 뿐이다. 어쩌면 저 배넌의 발언이 전해진 후 한국 정가 및 시민사회에서 쓰이는 방식과 똑같다.

물론 미국은 이 문제에 관해 우리보다는 더 선택지가 많다. 하지만 지난 8월 18일은 딱 41년 전인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판문점에서 미루나무를 베는 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당시 미국이 취한 ‘살벌한 보복’은 군사작전처럼 미루나무를 다시 베는 것이었다.

당연히 단순히 다시 베는 것은 아니었고, 그걸 방해하면 북침도 불사하겠다는 의지에서 병력이 주시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긴장도 높은 군사작전이긴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선택지를 가진 미국조차 되도록 손실이 적은 판단을 위해 노력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소련과 중공이 건재하던 냉전시절이므로 지금과 상황이 다르지만, 북한의 살상무기가 증대되어 왔다는 걸 생각하면 남한 입장에선 대동소이할 수도 있다.

언론은 적어도 ‘신뢰할 만한 해석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포털사이트 검색이나 정보 다발을 모아놓는 커뮤니티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물론 그들보다는 ‘팩트 검증’에 충실하겠지만, 종종 터져 나오는 실수들은 그 비율이 언론 아닌 이들에 비해선 높지 않음에도 다시 한 번 언론을 불신하게 만든다. 결국 이 불신을 이겨내려면 단지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의미있는 사실관계’들을 엮어 ‘신빙성 있는 추론’을 제시하는 게 언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취재처에 발목이 잡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기자수첩] 역시 과거의 경험담으로 소화하기 일쑤인 현재의 기자의 삶과 매체 환경에선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언론계 종사자들, 혹은 매체 내부의 머리를 맞댄 고민이 필요하다. ‘기레기’란 비난은 다소 핀트가 어긋난 면이 있지만, 그 냉소를 넘어서려면 결국 뉴스 생산과 유통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기자 개인의 과로가 아닌(지금도 이미 과로 상태다) 다른 방법으로 재조직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데이터앤리서치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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