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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더라인] 베네수엘라와 그리스는 없다

‘XXX 망국론’의 공수전환

기사입력 : 2017.07.28 10:15 (최종수정 2017.09.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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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사진=뉴시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1997년과 2007년, 그리고 2017년에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1997년 이전엔 ‘정권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곳’이었다. 2007년 민주정부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보수세력은 집권 10년 동안 다시 1997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란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정부는 보수언론에게도 버림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1997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었던 보수 종편 방송이 반정부 촛불시위대에게 환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치권력-사법권력-경제권력-언론권력의 동맹으로 요약할 수 있는 한국 보수의 컨소시엄에서 박근혜의 자리는 사라졌다. 그들은 대중으로부터의 탄핵을 피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지키기 위해 박근혜를 몰아내야만 했다. 2017년의 정권교체는 그러한 맥락 위에서 가능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의 열망을 받아들여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반만 옳고 반은 틀리다. ‘박근혜 파면’ 당시 여론지형도는 ‘80대 15’였다. 파면 찬성이 80%, 파면 반대가 15%, 유보층이 5% 정도였다.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여론지형도를 감안하면 파면 찬성 80%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35% 정도는 보수파였다.

촛불 내부의 이 35%와 태극기 15%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리더가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와 안철수는 그 지점에서 실패했다. 어쨌든 ‘촛불민심’이란 것의 방향이 한 방향은 아니었다. 현재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은 저 ‘80%’라는 강물의 흐름을 제 논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른바 제 논에 물대기,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80% 밑으로 떨어진 것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흔히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언론의 카르텔이 ‘촛불보수’ 35%를 정권으로부터 이탈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지지율이 여전히 70%를 넘는 상황은 그 노력의 효과가 아직까진 신통치 않다는 얘기도 된다.

무엇보다 보수언론과 보수논객들이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XXXX 망국론’을 답습하는 것이 실망스럽다.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은 가령 진보담론의 ‘한미FTA 망국론’ 같은 것을 조소해왔다. 진보언론이 한미FTA가 통과되면 나라가 멕시코가 될 거라고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웠던 베네수엘라 등은 오히려 파국으로 치달았단 게 조소의 골자였다. 그들은 2008년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를 대놓고 ‘광우뻥 정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현재 보수담론이 유통하는 망국론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최저임금 상승 망국론’, ‘탈원전 망국론’, ‘증세 망국론’, ‘증세 없는 복지 망국론’(바로 앞에 것과 모순되지만 그런 거에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도시재생 개발 망국론’ 등이다. 과거 진보담론이 한국이 멕시코가 될 거라고 겁박했다면, 지금 그들은 한국이 베네수엘라나 그리스가 될 거라고 협박한다.

물론 각각의 정책에 대한 실효성의 평가나 찬반토론은 중요하다. ‘촛불보수’가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본인들이 비난하던 그 방식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1997년, 2007년, 2017년에 벌어진 정권교체의 함의는 분명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권교체가 가능한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정당은 여당일수도 있고 야당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당이 자신들이 ‘만년야당’일 것처럼 굴면서 책임지지 않는 비판을 남발하는 것은 당연히 비판대상이다. 지난 십 년간 민주당은 수권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로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엊그제까지 여당 내지 여당 지원세력이던 이들이 섣불리 망국론을 유포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할까?

한국은 베네수엘라나 그리스가 될 수 있을까?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엔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삼성전자가 없다. 그들 나라엔 OECD 기준 최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노동자들이 없다. 그리스의 노동시간은 선진국 기준으로 상당히 긴 편으로 한국에 육박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제조업 기반이 한국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산업환경도 경제기반도 정치환경도 전혀 다르다. 한국이 베네수엘라나 그리스가 될 수 있다고 겁박하면서 한국이 멕시코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진보담론을 비웃을 수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에 의구심을 표할 수 있지만, 그게 한미FTA보다도 비가역적인 정책행위일까? 도시재생 개발이 우려스럽다면, 4대강이나 뉴타운에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증세 없는 복지’는 박근혜 정부의 전매특허였고, ‘중부담 중복지’는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주장한 것이 아닌가?

십 년 전만 해도 ‘종부세 세금폭탄’론에 쉽게 동의하던 시민들이 ‘슈퍼리치 과세론’에 80%가 넘는 지지를 보내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코리아드림’이 과거 ‘아메리칸드림’과 마찬가지로 계층상승의 가능성 속에서 빛났다면, 이제 서민들은 계층상승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건 막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일까, 아니면 지난 십 년간 정권을 운영한 정치세력의 책임일까?

적어도 두 가지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한미FTA 망국론’이나 ‘4대강 망국론’ 같은 것들이 담론 특유의 사유실험일 수 있다고 인정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본인들은 섣부른 ‘망국론’을 유포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 ‘한미FTA 망국론’이나 ‘4대강 망국론’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조소하려면, 가령 ‘무상급식 망국론’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무상급식 등 복지행정의 역효과가 누적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한미FTA나 4대강의 역효과의 누적을 주장하는 진보담론의 문제제기도 인정해야 한다.

정권 바뀔 때마다 ‘망국론’의 공수전환을 보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대한민국은 이제 정권교체가 가능한 나라다. 모든 정치주체들이 본인들이 통치권을 떠맡았을 때를 상정하고 신중하게 논의를 전개하는 것을 보고 싶다. 베네수엘라와 그리스는 없다.

*선을 넘는 행위(Over the line)는 스포츠 경기에선 반칙입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기존의 구획, 영역, 선을 넘어서서 생각해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버더라인은 정치/시사/언론/문화 등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선을 넘어서서 다룹니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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