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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대 대구지방변호사회 이춘희 회장 “변호사회 역사관 만들어 자긍심 갖도록 하겠다”

2019-02-15 21:18:09

[로이슈 전용모 기자]
이춘희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우롱차를 우려내고 있다.
이춘희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우롱차를 우려내고 있다.

제54대 대구지방변호사회 이춘희 회장 “변호사회 역사관 만들어 자긍심 갖도록 하겠다”


새해 1월부터 2년 임기를 시작한 이춘희 회장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삼일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무실 벽면에는 안동 집안 어른(이수락)의 붓글씨로 가득했다.

이 회장은 능혜스님(취운향당 대표)과의 인연으로 20년 전부터 보이차를 마시게 됐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보이차를 부르는 말 중 '청차(淸茶, 생차라고도 함)'와 '숙차(熟茶, 인공발효)'가 있다.

“보이차를 장복하다 보니 제 개인적으로 숙취해소에 제일 좋고, 입안이 헐거나 각종 염증에 치료예방에도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그래서일까 이 회장의 호는 명산(茗山))이다. 명은 차(茶)를 뜻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보이차를 직접 우려 대접한다고 했다.

서예(초서체)예도 남다른 조예가 있다. 10여년의 필력으로 대구서예문인화대전, 영남서예대전 초대 작가다. 그는 글씨 자체보다는 글씨로 표현된 내면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글씨자체도 멋있지만 글씨를 쓰는 모습자체가 정말 아름답다고 붓이 돌아가는 모습들이 멋있다”고 표현했다.

“서예를 하다보면 좋은 거 하나가 천천히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붓글씨를 쓰시는 분이나 잘 써진 글씨를 보면 공통적으로 보면 천천히 간다. 글씨를 쓰는데도 빨리 조급하게 쓰는 것은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퇴임이후 늦은 나이에 서예를 배우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이분들은 어릴 때 간접적으로도 서예의 맛을 본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릴 때 이를 배우면 성격이나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고 그 효과는 인생후반기에 나타난다고 본다”고 했다.

이 회장의 아내도 문인화 작가활동을 하면서 방과 후 학교에서 서예를 가르친다.

대학 미팅으로 직장 다니던 아내 만나 9년 열애 끝 결혼… 아들 2명 외국계 회사 근무

이춘희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이춘희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법대 안에 고시원에서 공부하다 친구의 주선으로 미팅을 나갔는데 처음에는 짝을 짓지 않고 만났고 그때 분위기를 감지한 친구들이 다시 미팅을 주선해 몰아주기해준 덕분에 당시 직장을 다니던 아내를 만나게 됐다. 1981년에 만나 9년 연애 끝에 1989년 결혼했다. 아들 2명은 뉴욕과 싱가포르에 나가있다.

이춘희 회장은 1960년 경북 예천출생으로 세금을 내는 소나무(석송령)가 있는 예천 삼천초등학교(폐교), 예천 감천중학교,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거쳐 경북대 법대 및 동대학원 석사졸업에 이어 박사과정(민사법)을 수료했다. 미국 로스쿨 석사과정(LLM)을 마쳤다.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5기), 육군법무관, 1989년 변호사 개업했다.

그간 대구지방변호사회의 외국인근로자법률구조단장, 홍보이사, 대한변협대의원, 부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아 회무를 익혔으며, 8년째 국제교류위원장을 맡아왔다.

반장으로서 선생님의 종아리를 때린 기억 아직도 마음 아파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인생의 길잡이 돼

이 회장의 학창시절얘기를 들어봤다. “말썽피우는 학생은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좀 더 공부 할 걸 하는 후회도 미련도 없을 정도로 매사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여학생들의 싸움이 있었다. 해당 학생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선생님에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상황을 알게 된 선생님은 67명의 아이들에게 매(회초리)를 구해오라고 했다. 우리를 혼낼 줄 알았지만 선생님은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것 같다”며 반장인 이 회장부터 선생님의 종아리를 때리게 했다. “지금생각해도....” 감정이 북받쳐 오른 이 회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이후 가정방문을 오신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하는 말이 “너는 법대를 가서 법조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말이 뇌리에 박혀 당연히 법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로에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의 길잡이 가 된 셈입니다.”

고등학교 때 해인사 하이킹서 배고픔 서러움 알아
전관예우라는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분쟁생기는 것

이 회장이 자신의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 회장이 자신의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고2때 친구와 후배들과 해인사로 당일치기로 무작정 하이킹을 떠났다. 그나마 있던 돈은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다써버려 수중에는 모두 돈 한 푼이 없었다. 고령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하루 종일 굶어 식당에 들어가서 외상으로 달라고 했지만 퇴짜를 맞고 다른 식당에서는 우리를 받아줬다. 밑반찬으로 총각김치가 나왔는데 그걸 몇 접시나 먹었다.

그때 서러움을 느꼈던 그는 결심한 게 있었다. “배고픈 사람한테는 밥을 줘라, 밥투정은 하지말자”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가 해준 음식에 투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아내의 음식솜씨가 좋다는 얘기일 것이다. 배고플 때 생각나는 음식은 ‘찌개’라고 한다.

화제를 바꿔 전관예우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두 가지의 측면으로 설명했다. 하나는 많은 사건을 진행하면서 절차적인 부분과 다양한 판례를 접했고 판결도 내리는 등 법률가적 측면에는 경험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법률외적인 부정적인 의미의 커넥션이 있다고 했다. 시쳇말로 검사나 판사출신한테 사건을 맡기면 실형 받을 것도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고 했다.

“이는 개념의 함정으로 본다. 불교에서 보면 세상만사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것은 이름을 짓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전관이라는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분쟁이 생긴다는 얘기다. 전관예우를 하면 안 된다는 반대급부가 되레 홍보효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변호사회 회무만 해야 된다는 제한은 없지만 가급적이면 재판에 안 들어간다고.

부동산, 이혼, 의료 등 9개 분야 ‘법률실무연구회’ 운영
좋은 변호사는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변호사
변호사 선임은 대구지방변호사회로 연락하면 안내해

이춘희 회장은 "좋은 변호사는 의로인 입장을 이해해 주는 변호사"라고 얘기한다.
이춘희 회장은 "좋은 변호사는 의로인 입장을 이해해 주는 변호사"라고 얘기한다.

이춘희 회장의 작품.
이춘희 회장의 작품.

시민들에게 더 나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대한변협에서는 전문변호사제도나 변호사 중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구변호사회에서는 부동산, 이혼, 의료 등 9개 분야의 ‘법률실무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이 어떤 변호사를 선임할지 모를 경우는 대구지방변호사회로 연락을 하면 해당 변호사를 연결해 준다고 했다. 이 회장은 회장이 되니까 변호사를 소개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회의 이름으로 추천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30년 경력의 변호사인 이 회장은 “좋은 변호사는 의뢰인(당사자) 입장을 이해해 주는 변호사”라고 얘기한다. 의뢰인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해결되는 부분도 있어 많이 들어주는 변호사가 좋다.

가끔 의뢰인들은 사건진술에 있어 자기가 유리한 부분만 얘기하고 상대방 얘기는 안하기 때문에 변호사는 의뢰인의 상대방 역할을 해주며 법리적으로 필요 없는 부분은 커트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정적으로는 조금 떨어져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감정에 함께 몰입 되다보면 자칫 사건의 초점이 흐려지는 부분도 있기에 그렇다는 설명이다.

변호사 30년 경력의 이 회장은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변호사의 일이 여러 개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법정에서 하는 송무, 재판업무가 많은데 법정다툼은 일반 민사사건에서 전체 차지하는 것의 일부이다. 형사 건에 있어 억울한 사람을 보호해주거나 억울함을 밝혀주는 이런 일들이 첫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든다면 동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사전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적 조치를 취해주는 거나 일반적인 분쟁이 생겼을 때 서로 간에 조정을 시켜주는 일도 변호사로서 의미 있는 일이다.

“법정에서 서로 다투는 이러한 것들은 젊은 사람들한테 맞겠다고 생각한다. 연배가 들어가면서 법정 싸움보다는 타협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혐의가 같은 사건이라도 형량은 달라…사람이 다르기 때문

이춘희 회장이 대화중 활짝 웃고 있다.
이춘희 회장이 대화중 활짝 웃고 있다.

이 회장은 혐의가 같은 사건이라도 똑 같은 형량이 선고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가령 의뢰인이 같은 사기사건인데 누구는 집행유예고 나는 왜 실형을 받느냐고 항변하는 경우가 있다. 혐의는 같더라도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사건에 있어 처한 환경이나 살아온 인생, 행위의 태양 등이 다르다. 가령 같은 절도죄라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절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사건이 없다고 한다.

대구지방변호사회는 1948년 7월 23일 창립총회를 거쳐 1948년 12월 28일 법무제 268호로 규약을 인가받음으로써 창립됐다.

이춘희 회장은 “대구라는 이 지역이 법조역사에서 보면 대단한 곳이다. 과거 고등법원이 있었던 곳은 서울, 평양, 대구다. 위상은 역사적으로 보면 대단하다. 그런데 경제규모가 수도권집중(80~90%)으로 가면서 변호사가 몰리다보니 지방변호사회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낮아진 게 사실이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했다.

또한 “제가 느끼기엔 대구가 정적인 사회이다 보니 국제화시대에 우리변호사회도 국제화와 동떨어져 있다”고 판단했다.

대구변호사회 역사관 만들어 자긍심 갖도록 할 것

이를 위해 대구변호사회 역사관을 만들어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변호사회란 것을 부각시키고 640여 회원 스스로도 자긍심을 갖도록 할 방침이다.

여기에 대한변협활동이나 국제적 법률행사(컨퍼런스) 참여나 파견에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한편 신임집행부는 △회장 이춘희 △제1부회장 이석화 △제2부회장 김각연 △제1총무이사 김철홍 △제2총무이사 김예리 △재무이사 전수희 △회원이사 전상훈 △홍보이사 남대하 △법제이사 이승훈 △교육이사 남호진 △사업이사 박진수.

이 회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다음과 같다.

이춘희 신임 회장이 전임 이담 회장으로부터 회기를 전달받고 있다.
이춘희 신임 회장이 전임 이담 회장으로부터 회기를 전달받고 있다.

△회원의 업무 전문화에 적극 노력(대한변협, 로스쿨, 로펌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 교육) △세무사·변리사·노무사·법무사·행정사 등 유사 직종의 직역 침탈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변호사 직역 수호에 앞장 △회의 재정을 튼실하게 해 대한변협 분담금을 낮추는 등 회원들 부담감경 △회원의 대외 활동을 적극 지원 △대구지방변호사회의 위상과 자긍심 제고(사무국 내에 가칭 역사관조성, 국가적 갈등이 있는 각 종 현안에 위원회 등 적절한 조직 구성) △대구법원 청사 이전에 적극 대처(최초 부지 확보 단계부터 법원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조를 통해 청사 내에 쾌적한 변론준비실 확보)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막무가내인 의뢰인으로부터의 시달림, 업무수행 중에 겪게 되는 법원·검찰의 부당한 조치 등 회원들의 고충 해소에 진력 등이다.

이 회장은 걷기운동으로 건강을 다진다. 걷기 동호회에 가입해 하루 만보 이상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악기로 대금을 배우다 어려워 포기하고 대신 하모니카를 배웠다고.

평생 변호사의 길을 갈 건지에 대한 질문에 이춘희 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회갑(환갑)이 61세를 의미하는데 회(回)나 환(還)은 한 바퀴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한 번은 내의지대로 태어난 게 아니라 변호사로 살았지만 다시 1살이 되는 해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한학)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전용모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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