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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 “재판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시민에 대한 최대의 서비스”

2018-08-17 23:30:05

32년동안 한 해도 재판을 거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최인석 울산지법원장.
32년동안 한 해도 재판을 거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최인석 울산지법원장.
[로이슈 전용모 기자]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 “재판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시민에 대한 최대의 서비스”

◆32년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재판…실력보다 좋은 게 성의
최인석 법원장의 이름 석 자 앞에는 ‘소신과 용기’ ‘야전형 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단독판사 때는 노조위원장이라는 별칭도 얻기도 했다. 비발디 판사라는 애칭도 있었다.

이른바 ‘깡치 사건(어렵고 복잡해 시간을 많이 요하는 사건을 뜻하는 법조계 은어)’을 넘겨받아 재판하면서 붙은 수식어다.

32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재판을 했다. 부산가정법원장과 부산동부지원장을 겸직해 두 법원을 왔다 갔다 할 때도 재판 일부를 도맡았다. 지금도 재판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인 저는 법정에 들어갈 때 늘 법정입구에서 기도를 합니다. 이거 제 것이 아니라고, 하늘로부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을 잊지 말고 재판하게 해달라고. 그래도 재판을 하다보면 후회스럽고 아쉬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종교개혁 구호 중 하나인 ‘본질로 돌아가자(아드 폰테스, Ad Fontes)는 의미를 되새기며 “판사로 임명받은 첫날의 심정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해야 공정하고 합리적인 재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건의 수가 일본보다 10배가 더 많다. 이렇다 보니 사건에 밀려 기록을 다 못보고 재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보다 판사가 오히려 진실에서 제일멀리 떨어져 있다고도 했다.

전관예우에 대한 입장도 들어봤다. 변호사는 산다고 하고 조서는 꾸민다고 한다. 시장의 가치로 봐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그런데 실력보다 더 좋은 게 성의다.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가 좋다. 실력과 성의까지 겸비한 변호사가 전관보다 더 낫다”고 말한다.

◆법원장은 바지사장(?)…쓴 소리 도맡아

법원운영과 법원장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저는 끌고 가지 않는다. 밀어주고, 막아줄 뿐이다. 법원장을 해보니 법원장은 ‘바지사장(?)’이더라. 실권이 거의 없다. 인사권은 대법원에서 행사하고 재판권은 전부 판사들이 쥐고 있다.

원장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 사무분담도 진작부터 판사들이 하자는 대로 했고 판사들이 정하지 못하는 부분만 원장이 정할 뿐이다. 일반적 인사는 사무국장에게 위임해야 한다. 그것이 법원의 오래된 전통내지 관행이다. 재정에 관한 것은 모두 정해져 있다. 원장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 자신을 살짝 디스(?)하기도 했다.

“‘대륙의 실수’란 말이 있는데 저는 본래 법원장까지 할 그릇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32년간 판사를 해왔고 법원장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디 가면 엉뚱한 소리, 쓴소리를 도맡아 한다. 차차 아시겠지만 디폴트(기본)가 좀 다르다. 그래도 법원장까지 시킨 걸 보면 이건 사법행정의 실수이거나 법원이란 곳이 요즘 알려진 것과는 달리 꽤 포용력이 큰 조직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활짝웃고 있는 최인석 법원장.
활짝웃고 있는 최인석 법원장.

◆목표는 친근한 법원장, 만만한 법원장…재판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시민에 대한 최대의 서비스

최 법원장은 법원구성원 전체에 대해서 헌법 제7조(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와 헌법 제10조(모든 국민은 행복추구권이 있다)를 거론하며 “두 조문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먼저 법원구성원이 행복해야 국민에 대한 봉사도 잘한다. 판사든 직원이든 법원직은 분쟁의 한 가운데 서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이다. 그래서 화목한 분위기 조성, 편안한 근무환경을 조성해주려고 하고 있다.

재판부에 있을 때는 일찍 출근했는데 관리자가 되고나서는 9시 조금 넘어 출근한다. 혹시나 지각(1~2분)하는 직원이 원장과 마주쳐서 민망해 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다. 물론 10분이 넘으면 직원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자율에 맡긴다. 취임사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 목표는 친근한 법원장. 만만한 법원장”이라고.

판사와 직원들에게 틈날 때 마다 이런 당부는 한다.

“재판이든지 민원처리든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라. 변호사든, 법무사든 민사소송의 원고·피고든, 수갑 차고 와서 재판받는 피고인이든, 등기부등본 떼러온 민원인이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라.”

최 법원장은 시민과의 소통은 전임자가 해오던 대로, 다른 법원에서 하는 대로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법원은 재판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시민에 대한 최대의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빈 소주병에 물을 담아가 회식에 참여하기도

“좀 무능하다는 말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각 재판부의 재판에 관해 판결문, 사무국의 보고자료, 언론보도 이상의 정보를 얻고자 하지 않는다.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고 국정감사에서 법원장이 그것도 모르느냐고 국회의원(고 노회찬)에게 한마디 들은 경우도 있다. 그것이 나의 소신이다.”

故 노회찬 의원을 거론하며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예리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고 귀띔했다.

직원들은 내버려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너무 방임하면 관심이 없다하고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면 부담스러워 한다.

술을 마시지 않아 약간의 애로가 있다. 그러나 소주병에 물을 담아가서 함께 회식하기도 하고 티타임, 오찬간담회 등을 통해 만나고 무엇보다 테니스를 함께한다. 조만간 문수경기장에 K리그 축구관람계획이 잡혀있다. 직원들과의 소통방식이다.

법원 합창단 활동을 통해 배운 노래실력으로 술 안마시고도 맨 정신에 노래하는 게 좋다고 한다. 보호소년 학예발표회 때 ‘돌아오라 소랜토로’를 부르기도 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로 시작하는 김민기가 만든 늙은 군인의노래(군가) 한 소절을 직접 들려주기도 했다.

빈 소주병에 물을 담아 회식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빈 소주병에 물을 담아 회식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국가보안법사건 영장 기각으로 스포트라이트

건강비결을 물었다. 테니스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제주에 있을 때도 골프장이 좋은 곳이 많은데도 골프대신 테니스를 쳤다고 한다. 테니스실력도 제법 좋다 20년 구력이다. 매일 테니스를 치고 출근할 정도다. 달리기와 산책을 즐긴다.

테니스 고수인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과는 잘 통하는 라이벌이었다고. 김용두 부장판사가 테니스로는 울산 1위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골프는 누구와 치면 문제가 되지만 테니스는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웃었다.

그는 1994년 대학교양교재 ‘한국사회의 이해’관련 경상대학교 교수 국가보안법사건의 구속영장을 기각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판결이 났다.

“그때는 시대환경이 지금과는 달랐다. 영장기각하고 나서 법원행정처가 아니라 정보기관이 뒷조사를 한 것으로 안다. 그때의 소신과 용기를 자랑하려는 것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책의 시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다.”

노건평 사건 재판, 소말리아 해적 사건 2심 재판장, 살벌한 해적사건 법정을 웃음바다로 만든 애드리브, 문재인 대통령 양산집 사건 행정소송 2심 재판장을 맡기도 했다.

◆부친 덕분에 판사생활 제대로 할 수 있어 감사 …캠퍼스커플 아내와 관사서 생활

“초등학교 문간에도 못 갔어도 정말 현명하고 결단력 있고 지식이 많은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의 부친을 평가한 말이다.

부친이 70대~80대에도 양식할 논하나 밭 하나 과수원 일부를 남겨놓고 팔아서 현금화 시켜 금전적으로 자식에게 지원해줘 그 덕분에 판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모친에 이어 3년 전 작고했다. 용돈은 푼돈으로 드리는데 부친으로부터는 받은 것은 목돈이었다고 했다.

아들 세 명중에 한 명은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해서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최 법원장은 1년 동안 전업 농부를 하기도 해 남다른 농사지식을 갖고 있다.

“벼에 비료를 많이 뿌리면 벼 알맹이가 많이 달리는 반면 태풍이 오면 쉽게 쓰러진다. 반대로 하면 태풍이 와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의미 있는 얘기를 건넸다.

아들 세 명중 둘째인 그는 첫째 형이 서울시청서 근무했고 38세에 사무관에 오를 정도로 유능했는데 40대 초에 그만 등산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장남역할을 하게 됐다고.

모친역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훌륭한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은 고아라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캠퍼스 커플로 5살 차이 나는 아내와는 사법연수원시절인 1985년에 결혼했다. 현재 법원근처 관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음식실력은 좋다. 특히 국수 하나는 식당을 차릴 정도의 실력이다”며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와 가끔 영화도 보러간다고.

이들 사이에는 2명의 딸이 있다. 큰딸은 핀란드 헬싱키서 스웨덴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둘째는 로스쿨 공부중이다. 둘 다 미혼이다.

관사가 오래된 아파트지만 바로 눈앞에 울산대공원 숲이 보이고 등산로도 있어 산책하기 좋고 거의 매일 산책, 달리기, 법원 테니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출근한다. 이렇다보니 아침은 꼭 챙겨먹을 수밖에 없다.

아침은 누룽지와 바나나, 제철과일을 먹는다고, “촌놈이라서 각종나물과 토속적인 음식 좋아합니다.”(웃음)

경남 사천인 고향인 그는 6남매 중 넷째다. 아들 세 명 중에는 둘째다.

처음 대학 들어갔을 때는 집안형편이 녹록치 않아 등록금 걱정을 했다. 동생이 따라 올라오니까 형편상 대학 2학년 마치고 군에 가야만 했다.

벽면에 걸려있는 현병찬 서예가 작품.
벽면에 걸려있는 현병찬 서예가 작품.

◆형편 어려워 군대 갔는데 제대하고 나니까 되레 형편 나아져…예체능하나씩 다해

그런데 3년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나니까 단감과수원이 잘돼 형편이 넉넉해져 괜찮은 집안의 아들이 됐다고 한다. 흑수저에서 금수저로 바뀐 셈이다.

군에서 행정업무(규정에 따라 처리하는 업무)를 한 터라 리걸 마인드가 있어 복학해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은 만큼 부친이 등록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용돈으로 줬다고 했다.

대학 다니면서 삼국유사 원전을 그룹스터디 했는데 전공으로 볼 때는 쓸데없는 공부를 한 셈인데 이게 판사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양산에서 유명한 채현국 할아버지(효암학원 이사장)의 “아무짝에 쓸모없는 공부를 해야 나중에 진정한 도움이 된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래서일까. 가을에 조정위원 연찬회 할 때 조정하고 법하고 전혀 관련 없는 음식에 관한 글을 부산일보에 연재하던 이태호 명예교수 등을 초빙했고 제주도에서도 유배문화에 관한 강사를 초빙해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9월에는 정무영 유니스트(UNIST) 총장을 초빙하기로 했다.

예체능하나씩 다한다. 클라리넷, 서예, 테니스가 그것이다. 핸드폰 벨소리(마법의성)도 법원장이 직접 클라리넷을 연주해 녹음했다. 서예는 국전대상을 받은 현병찬(제주도 서예가)선생에게 사사했다.

“서예는 나이가 들어서 배워도 실력이 는다.”는 법원장의 사무실 벽에 현병찬 선생의 작품이 걸려있다.

◆잘못한 사건이 더 기억에 남다…무기징역 선고했지만 항소심서 무죄

거제 강도살인사건 1심 재판장(통영지원장) 때 '피해여성의 손톱에서 나온 성염색체의 유전자형 11개가 피고인의 Y염색체와 일치하는 만큼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X염색체 없이 Y염색체만으로도 증명력이 있다’는 첫 판결로 주목을 받았다.

용의선상에 오른 수백 명의 택시기사를 상대로 타액을 채취해 그 중에 일치되는 기사를 지목했다.

하지만 2심, 3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 도중 외국인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2만5000 여명의 Y염색체 유전자좌를 검색한 결과, A씨와 7개가 같은 사람이 4명, 8개가 같은 사람이 1명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재판부는 “현장에서 나온 Y염색체의 유전자좌가 A씨 것이 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검찰의 상고를 기각, A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최 법원장은 “대표적인 오판이다. TV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 그런데 왜 재판부에 대해 취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구속된 지 5개월이 지나 심리기간이 1개월 밖에 없었다. 1심에서는 시간이 모자라 하지 못했던 증거조사 더 해야 한다고 고등법원에 건의했다(Y염색체검사, 불리하게 나올 수도 유리하게 나올 수도 있는 경우였고 결국 피고인에게 불리하지 않게 나옴).

그러나 변론에 나타난 증거만으로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형사 재판하는 판사의 숙명이다. 이것도 기억과 자존심이 충돌할 때 기억은 자존심에 굴복하고 만다는 인지부조화 증상일까를 스스로 반문했다.

통영 성폭력사건은 장기간(1년6개월)의 심리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학교 다닐 때 수학 못했는데 ‘경우의 수’를 이용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국선변호인(국회의원)이 어느 글에서 ‘재판부가 판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미덕을 다 보여주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 피고인이 다른 성폭력 사건으로 또 피소돼 똑같은 전략, 전술로 다투었으나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로 유죄판결, 고등법원에 와서 더 무거운 판결이 선고됐다.

갑자기 자신의 판결에 대한 자신감이 상실됐다고.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는 최인석 법원장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는 최인석 법원장


◆무기징역 선고 받은 피고인에게 감사편지 받은 사연

최인석 법원장은 무기징역 선고 받은 피고인에게 항소기각하고도 감사편지 받은 사연을 전했다.

전과 많고, 살인 2건, 강도 2건 등으로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최 법원장은 선고이유에서 “피고인은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도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았다. 죄질은 불량하다. 구치소에서도 계속 사고치고... 사형선고도 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나 국가가, 사회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준 게 있다고 생명까지 빼앗나. 무기징역으로 족하다”고 밝혔다.

피고인은 울면서 갔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이제 자신이 새사람으로 태어났다면서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또 고아원에서 자란 소년을 용서해주면서 일침을 가한 말이다.

“나는 왜 부모를 잘못만나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생각하겠지. 그러나 자네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될 거다. 계속 그렇게 살면 자네 아들이 ‘나는 왜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하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정신 제대로 차리고 살아라.”

그 소년은 울면서 갔다. 분해서 울었는지 깨달음이 있어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창원지법 부장판사로 민사일부를 담당했던 사건이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바뀌었다면서 소송했던 당사자가 민사, 형사 모든 소송 다하고도 패소하자 관여한 1,2,3심 판사, 검사, 경찰관 모두 고소했다. 유일하게 그의 재판부만 제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당사자가 ‘혐의없음’ 판단받자 고등법원에 재정신청하면서 고등법원 주심판사가 “어떻게 그 재판부만 고소에서 빠졌냐”고 문의해 알게 됐다. 그는 “당사자가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고, 현장검증도 세세하게 하고 한 술 더 떠 심리해준 덕분이 아닌가 싶다”고 회상했다.

◆최불암 씨 앞에서 최불암 시리즈로 나름 제법 웃기는 사람

2015년 8월 4일 부산가정법원장 시절 최불암 씨가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최불암 씨에게 최불암시리즈를 들려준 일화를 소개했다.

건설업자 모임에 가서 공사다망(公私多忙)의 의미를 몰라 공사(工事)가 다 망(亡)했다고 말하자 최불암 씨가 파안대소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 때 해운대구 중동 소재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법과포럼 인사말에서 “혹시 근래 병원에 가게 되면 대략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중동 갔다 온 적이 있느냐 물을 것인데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라고 유머도 잊지 않았다.

해운대에서 열린 변호사대회 축사에서는 “부산에는 해운대, 태종대, 그리고 OO대가 좋습니다”라는 OO대학 광로를 패러디 해 “부산의 3대 명문대학 중인 하나인 해운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법정에서 빔프로젝트 시연할 때 비발디 4계를 틀어준 이후 그를 ‘비발디 판사’라고 칭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를 비유한 웃기는 얘기를 풀어놨다. 두 남녀가 경양식집에서 소개팅을 했는데 그때 비발디 음악이 들리자 남자가 여자에게 “이곡(고기)이 무슨 곡(고기)인지 아시나요”라고 묻자 “돼지고기 아닌가요”라 답했다고.

울산가정법원 개원식 건배 제의 시에도 그의 유머와 위트는 이어졌다.

“외부 공문을 보면 ‘귀 기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로 시작하는데 법원은 무궁하게 발전하면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가정법원의 후견적, 복지적 기능은 무궁하게 발전해도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법원장이 유머와 재치를 겸비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다.

보호소년 학예발표에 가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1,2,3 시리즈를 축사대신 낭송해 주기도 했다.
보호소년 학예발표에 가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1,2,3 시리즈를 축사대신 낭송해 주기도 했다.

◆부산가정법원장을 역임해 문제 소년들에 관심 많아

법원이 각종 혜택을 베푼 보호소년들에게 “이게 공짜가 아니다. 나중에 너희 다음세대에 갚아야 한다.”

최고의 영재학교에서도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처럼 백만 명을 먹여 살릴 인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길태 처럼) 삼백만 명을 불안에 떨게 하는 외로운 늑대 한 마리를 키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지극히 타산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문제 소년들에게 지금 관심과 비용을 들여서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 나중에 상습범죄가가 되었을 때 들어갈 사회적 경제적 비용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관심을 가져야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보호소년 학예발표에 가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1,2,3 시리즈를 축사대신 낭송해 주기도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 1)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습까지 알고 나면 인연이 된다/아, 이것은 비밀(풀꽃 2)

기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워 봐/ 참 좋아(풀꽃 3)

나태주 시인과의 인연으로 제주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에 초정강연을 갖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처장부터 심의관까지 신분이 판사이지 직무는 판사가 아니다

작금의 사태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법원도 구성원 월급 주어야하고 법원도 구성원들 유학 보내야 하고 법원도 청사 새로 지어야 한다. 법원행정처는 그런 일 하는 곳이다. 대국회, 대정부, 대언론 업무 담당하는 곳이다.

법원행정처 처장부터 심의관까지 신분이 판사이지 직무는 판사가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외교부장관과 법원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대법관을 불러 강제징용사건 재판의 연기를 논의했다’는 최근 보도관련 재판의 연기를 논했다?에 대해 감싸고 싶은 마음 없다. 법원을 대표하는 대법관은 오해하기 쉬운 잘못된 표현이다.

법원을 대표하는 사람은 대법원장이다. 법원행정처장은 사법행정에 관해 법원을 대표한다. 처장도 대법관이지만 대법관의 지위에서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원행정처장이 아닌 주심 대법관을 만나자고 했다면 어느 대법관이라도 아마, 아니 틀림없이 만자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고 했다.

◆재판을 맡은 판사는 무소의 뿔처럼 가야

재판을 하다보면 절차나 결론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세력이나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당사자, 변호사, 검사로부터 시작해 언론, 인권단체, 여성단체, 노조, 그밖에 국회, 정부기관, 친지, 동문, 브로커 등 행정처도 그중의 하나 일 수 있다.

일선 법원에서는 법원장, 수석부장이 창구? 바람막이가 되느냐, 바람개비가 되느냐의 문제다.

“어느 쪽이든 간에 재판을 맡은 판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걸 판사라고 할 수 없다.”

최인석 법원장이 법원행정처가 재판거래를 했다는 것에 대해 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다.
최인석 법원장이 법원행정처가 재판거래를 했다는 것에 대해 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자신하고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30년 이상 판사로 살아오면서 법원행정처나 소속 법원의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내 재판을 이래라 저래라 했던 경험이 없다. 그렇게 보고 배웠기 때문에 나도 수석부장이나 원장이 되어서 판사들에게 구체적인 사건을 이래라 저래라 한 기억이 없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수석부장이나 원장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경험과 상식이다.”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나 국회, 정부기관과 재판에 대해 거래를 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 단계가 하나 더 남아있다. 재판권은 법원행정처의 권한이 아니다. 각 재판부의 권한이다. 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자신했다.

최인석 법원장은 1957년 경남 사천 출신으로 진주 대아고등학교와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6회 사법시험(연수원 16기)에 합격했다.

▲제19대 울산지방법원 법원장(2018.2) ▲제주지방법원 법원장(2017.2 ~ 2018.2)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2016.2)▲부산가정법원 법원장 겸 부산동부지원장(2014.2 ~ 2016.2)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2012 ~ 2014.2)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2010) ▲창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2009)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지원장(2005)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2002)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지원장(1999) ▲부산고등법원 판사(1997)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판사(1987)

전용모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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