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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한센인 강제 정관수술(단종)ㆍ낙태…첫 국가배상책임

2017-02-16 12:38:00

[로이슈 신종철 기자] 대법원이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단종) 또는 임신중절수술(낙태)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에 따르면 A씨 등은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들로서,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가 1950년경부터 1978년경까지 사이에 소록도병원 의사 등으로부터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국가는 국립병원에서 남녀를 구분 수용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부부동거를 허용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해 정관절제수술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부부사(夫婦舍)를 제공하는 정책은 1990년대까지도 유지되었기 때문에 부부동거를 원하는 남성은 정관절제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병원은 임신과 출산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책 역시 1990년대까지 유지돼 임신한 여성이 굳이 출산을 원한다면 퇴원해야 했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낮고 장기간 수용생활을 한 한센인들로서는 갑작스럽게 퇴원해 정착촌이나 일반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자립능력이 부족했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상존하는 외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다 기존의 생활터전을 잃는다는 상실감도 있었기 때문에 퇴원을 선택하기 힘들었고, 퇴원을 원하지 않는 임신 여성은 결국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2007년 10월 제정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한센인피해사건법)에 따라 설치된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A씨 등이 소록도병원 등에서 격리 수용돼 있는 기간 동안 강제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로 결정했다.

이에 A씨 등은 “국가가 국립소록도병원 등에 격리 수용하면서 의사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한센인들에 대해 강제로 행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이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2민사부(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는 2014년 4월 한센인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정관절제수술을 받은 9명에게 각 3000만원씩,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10명에게 각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센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냉대와 멸시는 그들에게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심한 정신적 고통과 모욕감을 주었다”며 “그러나 피고(국가)는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에 의해 고통 받고 살아온 한센인들에 대해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 편승해 한센인들을 엄격히 격리하고 자녀마저 두지 못하게 함으로써 한센인들에게 심한 열등감과 절망감을 심어 주었다”고 밝혔다.

또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원고들이 갖는 인간본연의 욕구와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을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제한하면서 오히려 원고들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고 수치심을 느끼도록 한 것으로서 반인권적ㆍ반인륜적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대부분의 원고들이 노후를 보살펴 줄 자식도 없는 처지가 되어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게 됐으므로, 금전으로나마 고통을 보상해줄 필요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인 광주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서태환 부장판사)는 2014년 10월 “1심 판결은 정당하다”며 한센인들의 손을 들어 준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 한센인 강제 정관수술(단종)ㆍ낙태…첫 국가배상책임 이미지 확대보기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15일 한센인 피해자 19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정관절제수술을 받은 9명에게 각 3000만원씩,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10명에게 각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국가) 소속 의사가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않았다면 헌법상 보장된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더욱이 이런 침해행위가 정부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며,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한센인들로부터 ‘사전 설명에 기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만일 피고가 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했다면 설령 정부의 보건정책이나 산아제한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 소속 의사가 원고들에 대해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 등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위험성과 전염위험성, 치료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설령 원고들이 수술에 동의 내지 승낙했다 할지라도, 원고들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ㆍ교육ㆍ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보일 뿐 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는 소속 의사 등이 행한 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국가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피고 대한민국 소속 의사 등이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 또는 임신중절수술은 한센인들의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고,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한 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피고는 그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점을 밝힌 첫 번째 대법원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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