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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승민 변호사, ‘불법행위 손해배상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2016-07-19 12:33:21

[로이슈 외부 법률가 기고 칼럼]
현행 불법행위 손해 배상 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강승민 변호사(법률사무소 태우)
[칼럼] 강승민 변호사, ‘불법행위 손해배상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출시된 2001년부터 판매 중지된 2011년까지 152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 중 239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들이 충분한 손해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현행 손해배상 제도로는 불충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 설문 결과 응답한 변호사의 90% 이상이 도입을 찬성하고, 천여 명의 법조인 등이 모여 가칭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 모임’이 발족하는 등,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영미법계와 우리나라 손해배상 제도의 큰 차이 중 하나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즉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배상하게 하는 제도이다. 실손해 배상과 달리 반사회적 행위의 금지 및 재발방지를 위한 처벌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행위자에게 실제로 발생한 손해만을 배상토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통설과 판례는 차액설에 근거해 손해의 범위를 파악하고 있다. “불법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란 그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 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 상태의 차이”라는 것이다(대법원 1992.06.23. 선고 91다3307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는 결국 불법행위 피해자의 실제 손해액을 따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실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한다’는 것은 얼핏 듣기에는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 손해 인정의 어려움, 지나치게 적은 위자료, 과도한 과실상계 등의 이유로 인해 대개 피해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조차 배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는 피해자가 손해를 보기 쉬운 경우 중 하나다. 집에 불이 나 세간과 가재도구가 모두 소실된다면, 피해자로서는 집을 고치고 가구를 새로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손해 배상액은 대개 해당 수리비와 새 가구 구입비용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 법원에서 인정하는 피해자의 ‘손해’란 감가 상각된 건물의 수리비용 및 중고 가재도구의 평가액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아무 잘못도 없이 화재 피해를 입었지만, 중고 가구의 가치만큼 손해 배상을 받고 그 돈으로 새 가구를 구입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에 의한 손해배상의무의 경감까지 이루어질 경우,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이보다도 더 줄어든다.

인사 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우리 법원은 1) 치료비와 개호비 등 적극적 손해와 2) 상해 등으로 인해 상실한 노동 능력에 대한 일실 수입 3) 위자료 등 세 가지 종류의 손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의 세 가지 항목을 모두 합쳐 보아도, 이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해당 상해로 인해 내가 입은 고통과 피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 능력을 상실할 정도가 아니라면 일실 수입의 산정 시 그 고통과 불편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며, 우리 법이 인정하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란 극히 소액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가배상법 시행령 별표5 ‘신체 장해에 대한 위자료 기준표’의 경우, 노동력을 100퍼센트 상실했을 때의 위자료가 2천만 원으로 터무니없이 적다. 노동력을 100퍼센트 상실하려면 두 눈이 실명하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대한 장해를 입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위자료는 고작 2천만 원에 불과하며, 중간 이자까지 공제한 일실 수입의 배상 정도로는 피해자가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벌었을 소득은 물론 피해자의 정서적, 정신적 상실감을 달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피해자 쪽에 과실상계가 인정된다는 점 역시 손해배상액의 현실화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의료 사고의 경우 기왕증, 면역력 저하, 고령 등을 이유로 과실상계가 인정된 경우가 다수 있으며, 심지어 이러한 기왕증 등을 고려하여 노동능력 상실률을 계산한 후 이를 다시 책임제한 사유로 하여 2중 감경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앞서 언급한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중과실이 없음을 이유로 가해자의 책임을 적게는 40%, 많게는 50%까지 감경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고를 당한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나와 관계없는 이유로 손해 배상도 절반 밖에 받을 수 없다니,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야기다.

지금까지 우리의 손해배상 제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손해를 남김없이’ 혹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죄까지 포함하여’ 배상한다기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손해를 분담하여 사안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분쟁 해결 방식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한 순간의 실수로 막대한 책임을 부담하게 된 가해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배상액의 부족과 그로 인한 억울함이 남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옥시 사태와 같이 가해자가 일반 개인이 아닌 거대 기업인 경우, 가해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적어진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민법 제정 당시와 달리,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거대 기업과 경제적 주체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와 함께 이들의 반사회적 행위를 금지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다.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 손해 배상액의 현실화 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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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민 변호사 주요약력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기
법률사무소 태우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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