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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주영 변호사 “당신은 술ㆍ담배 많이 하니까 왠지 폭력적일 것 같다(?)”

2016-07-15 09:32:57

[로이슈 외부 법률가 기고 칼럼] “당신은 술ㆍ담배를 많이 하니까 왠지 폭력적일 것 같다(?)”
안주영 변호사(예강 법률사무소, 변호사시험 4회)

형사 사건을 주로 맡아서 하다보면, 피의자에게 조력을 주고자 피의자신문 절차에 입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피의자 ‘신문’이란, 특정 범죄의 혐의가 있는 피의자에게 그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는지를 ‘따져서 묻는’ 절차를 말한다.

그런데, 매번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오가는 문답을 듣고 생겼던 의문이 있다. 언제나 본격적인 ‘신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치 법으로 정해진 듯이 가장 우선적으로 피의자에게 물어보는 질문들이 있다.

안주영 변호사(예강 법률사무소)
안주영 변호사(예강 법률사무소)
피의자의 형사처벌 전력, 병역관계, 과거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이나 표창 등의 유무, 정당 또는 사회단체 가입 여부, 피의자의 학력이나 경력, 주량이나 흡연 여부, 질병 유무 등이 바로 그것인데, 범죄사실에 대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를 어떤 의도로 묻는 것인지, 들을 때마다 항상 궁금하다.

모든 질문에는 의도하는 바가 있기 마련인데, 위 질문들 중 몇몇은 도대체 범죄혐의를 밝히는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꽤나 심층적인 개인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단순한 ice-breaking으로 보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중 피의자의 동종 형사처벌 전력을 묻는 질문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다만 그 경우도, 수사기관이 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음에도 고소인과의 대질 신문 과정에서 버젓이 물어 피의자가 그 사건과는 관련 없는 내용을 고소인이나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는 것은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예컨대 피의자의 병역관계의 경우, 만약 피의자가 군대를 정상적으로 다녀왔다면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조금은 줄어드는가 아니면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조금은 용서해줄 필요가 생기는가? 그렇다면 피의자가 여성인 경우는 어떨까?

국가로부터 훈장이나 표창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나 범죄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훈장이나 표창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정당이나 사회단체 가입 여부는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이 질문은 혹시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로부터 내려져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피의자의 학력이 높거나 낮음, 경력이 뛰어남과 일천함은 어쩌면 그 사람이 얼마나 이 사회의 ‘제도’에 잘 적응해왔는지를 나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취업시장에서는 아무도 신입은 안 찾고 경력만 찾아서 사회초년생들이 맘고생을 한다는데, 설마 피의자신문을 받을 때도 경력자가 우대를 받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우리는 훌륭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추잡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런 점에서 학력이나 경력도 결코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는 어렵다.

흡연이나 음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그 사건이 주취상태에서 저질러진 폭력 범죄나 음주운전에 관한 것이라면, 평소 주량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음주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기 사건에서 주량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 흡연 여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질병에 관한 질문은 가장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다. 질병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 속한 개인정보가 아니었던가.

한 번은 필자가 입회 중이었던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피의자가 “질병은 왜 물어보냐”며 반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수사관은 “혹시 질병 때문에 신문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파악하려 한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아,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면, “질병이 있습니까”라고 묻기보다는 “피의자는 피의자 신문을 받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질병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도로 그 범위를 제한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막연히 질병이 있냐는 질문에 피의자가 멋모르고 감추고 싶은 질병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도록 배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따져 묻는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범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개인정보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조사되고 있지만, 그 목적이나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물론 위와 같은 신상정보들은 추후 법원에서 양형에 관한 자료로서 검토되기 때문에, 정보 수집의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든 피의자는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동등하게 무죄로 추정되어야 하기에, 일반적으로 범죄와 친하다고 여겨지는 몇몇 요소들로서 피의자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정보들, 예컨대 낮은 학력, 일천한 경력, 적은 재산, 잦은 음주 등의 사실들은 그 사람의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베일에 가려진 채로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선 피의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는지 여부를 우선적으로 상세히 조사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모든 조사가 상당한 수준으로 성숙해졌을 때에 이르러 그 외의 개인정보들을 조사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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