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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성민 변호사, 재판 시작되기도 전에 피의자 얼굴 공개?

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청조)

2016-06-29 19:57:45

[로이슈 외부 법률가 기고 칼럼]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피의자 얼굴 공개를?>

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청조)
강성민 변호사
강성민 변호사
2016년 4월, 경기도 안산에서 토막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며칠 뒤 피의자가 체포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경찰은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인 조성호의 얼굴을 공개했다. 얼굴이 공개되자 피의자가 그동안 자신의 SNS에 올렸던 글과 사진들이 순식간에 퍼졌고, 인터넷 어디서든 피의자의 신상정보와 과거 행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흉악범 얼굴공개’이다. 흉악범 얼굴공개의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 제8조의2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피의자의 얼굴과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강법에 따르면 수사단계에서 ‘흉악범’이라고 판단되는 자는 곧바로 얼굴과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아직 유죄의 판결이 확정된 자도 아니고, 심지어 검찰로부터 정식으로 기소가 되어 ‘피고인’의 지위에 있는 자도 아닌데, 단지 ‘흉악범’이란 이유만으로 경찰 수사 중인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일까. 물론 특강법의 규정이 있어 현행법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옳은 일’일까.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1심이나 2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더라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그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해야 하고,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형사상 불이익뿐만 아니라 일체의 어떠한 불이익도 받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피의자의 얼굴 및 신상 공개는 매우 강한 ‘사회적 형벌이자 불이익’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군부독재 시절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가 횡행하였기 때문에, 경찰 단계에서 있을 수 있는 위법수사의 가능성은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무시한 채 수사기관이 (아직 피고인이 아닌) 피의자의 지위에 불과한 자에 대하여 단지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적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흉악범 얼굴공개로 인해 그의 가족들과 지인이 겪게 될 인권침해와 낙인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헌법 제13조 제3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연좌제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불이익한 처우’란 ‘일체의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범죄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그 주변사람들에 대하여 실질적인 연좌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범죄피의자의 신상이 드러나면 그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의 신상정보까지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아직까지 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흉악범 얼굴공개의 근거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나 공공의 이익을 들고 있지만, 이는 실로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범행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리고 이와 같은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알려주는 ‘범죄사실 공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국민들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겠지만, 흉악범의 ‘얼굴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달성하는 측면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국민들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012년 9월 1일, 조선일보는 신문 1면에 ‘나주 성폭행 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공개했다. 하지만 곧 사진 속 인물은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무고한 사람임이 밝혀졌다. 이제 그 무고한 시민의 침해받은 인권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어떤 손해배상이 그의 삶을 ‘오보’ 전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흉악범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오판’의 가능성을 줄이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궁극적인 몫은 대한민국 헌법상 ‘법관’에게 있다. 법관의 판단이 있기 전까지는 전국민에 의한 ‘사회적 유죄’ 판단은 잠시 보류하고 있는 것이 신중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범죄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 보호는 우리도 부담해야 하는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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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청조)

학력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석사

경력
2015.08~ 법무법인 청조 변호사
2015.07~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2015.03~2015.08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저서
상법엑기스1, 상법엑기스2, 민사기록 엑기스, 공법기록 엑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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