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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속기사 외주 용역에 발끈한 법원노조

법원노조 기자회견 “차라리 법원행정처장을 용역화 하는 게 낫다”

2008-11-27 13:09:38

대법원이 법정에서의 증인신문·피고인신문 조서 작성 업무를 외부 속기업체에 맡기는 속기용역계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 발끈하고 나섰다.


현재 법원노조(위원장 이강천) 각 지부별로 속기용역 반대를 위한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노조는 26일 오후 2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서작성을 외부에 맡긴다는 것은 부실 재판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매우 큰 위험한 발상”이라며 대법원에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대법원은 정원동결, 예산절감 등의 이유로 증인신문, 피의자신문조서 등의 업무를 법원의 속기사뿐 아니라 외부 속기업체에도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작성한 ‘속기용역 시범실시 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의 신문조서작성은 ▲법원 속기사들이 법정에 참여하지 않고 녹음파일을 듣고 녹취서를 작성하고 ▲도급용역 방식으로 외부업체에도 녹취서 작성을 맡기며 ▲기존의 속기사와 속기용역을 포함하는 풀(pool)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법원노조에 따르면 ‘속기업무인력 효율화’라는 명목 하에 실시되는 이 제도는 안산, 제천, 포항, 진주지원 등 규모가 작은 지원에서 내년 1월까지 ‘시범실시 형태’를 거쳐 ‘전면 실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강천 위원장 “즉각 철회하지 않으면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

이강천 법원노조 위원장 이에 대해 법원노조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노조 이강천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먼저 “속기사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는 법원내부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법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관 75%가 이 문제를 반대하는데도 법원행정처가 밀어붙이기 식으로 행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속기용역은 부실재판과 개인정보유출 가능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제도”이라고 경고했다.

이 위원장은 “법원행정처는 법원노조와 합의한 단체협약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는 속기사 문제 등 법원노조와 실무협의를 즉각 실시하고 현재 시범실시하고 있는 속기사 용역문제를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즉각 철회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법원노조가 기자회견을 열자 법원행정처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회견장에 법원행정처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마치 채증 작업을 하듯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법원노조 집행부들의 모집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
이에 법원노조가 반발하며 사진을 찍지 말 것을 요구하자 법원행정처 직원들은 한 발 물러서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좌측은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홍성호 수석부위원장, 가운데 이강천 법원노조 위원장, 우측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손영태 위원장
◈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 “차리리 법원행정처장을 용역화하라”


이날 기자회견에 동참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손영태 위원장은 연대사를 통해 “사람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어떻게 법원에서 속기사들을 천시하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느냐”고 분개하면서 “법관은 고시로 무엇 하러 뽑으며, 차라리 법원행정처장을 용역화하는 것이 낫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손 위원장은 “속기사들은 밤 12시까지 손가락이 부릅뜨도록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아느냐”며 “모든 속기사들이 이번 일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외부 용역화할 경우 전국의 공무원노동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구속을 각오하고 한판 붙겠다”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 홍성호 전국민공노 수석부위원장 “법원노조와 함께 투쟁”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홍성호 수석부위원장도 “속기사 풀제가 웬 말이냐”며 “속기사 풀제는 재판의 안정성을 해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의 사명은 정치로부터 독립이요, 재판의 공정성인데,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어디 가고 예산과 효율성을 따지느냐”며 “법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나가려는 법원노조와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동참의지를 분명히 했다.

제3기 법원노조 위원장으로 출마한 오병욱 부산지부장이 법원행정처를 비판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무총장으로 출마한 현성훈 서울동부지부장
◈ 오병욱 부산지부장 “속기사들의 목을 죄는 것을 왜 모르나”


제3기 법원노조를 이끌 위원장 후보로 단독 출마한 오병욱 부산지부장은 “법원노조는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재판업무의 현실을 무시한 법원행정처의 속기사 풀제, 속기용역 시범실시 및 전면실시 계획의 백지화를 촉구한다”며 “법원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것이 주요과제라면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비정규직에게 업무가 전가될 이러한 제도는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지부장은 “지금은 비록 계약직이지만 정규직으로 근무할 날을 기다리며 희망을 가지고 있던 속기사들의 목을 죄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분개하면서 “법원이 일방적으로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악화시켜 나간다면 조합원의 총력을 모아 법원 안팎의 연대조직까지 포함한 어떠한 투쟁도 불사할 것을 천명한다”고 경고했다.

◈ 이상원 사무총장 “법원업무 외주화 시발점이 될 위험 크다”

이날 사회를 이끈 법원노조 이상원 사무총장은 “법원의 계획대로라면, 개인정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정의 발언들이 파일 형태로 외부업체에 넘겨질 위기에 처해 있다”며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증거자료가 되는 조서작성을, 비용 절감을 이유로 검증되지 않은 업체에게 헐값으로 맡긴다는 것은 부실재판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총장은 또한 “비정규직 관련법을 악용하는 사업장에 대해 사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법원이 정규직 인원을 늘리는 대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며 “속기용역 제도는 법원 업무에 대한 구조조정과 외주화의 시발점이 될 위험도 크다”고 우려했다.

◈ 대법원 “속기사 과중한 업무부담 경감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전국 법원에서는 11월 초부터 현재까지 법원노조 각 지부가 중심이 되어 속기사 문제를 중심으로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으며, 법원 내부 전산망에는 속기용역을 반대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측은 지는 14일 사법제도심의관 명의로 내부전산망에 글을 올려 “속기용역은 속기인력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 구조조정의 수단이나 업무 외주화의 시발점으로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현재 법원의 증인신문 조서 등의 작성은 약 3백여명의 속기사가 맡고 있으며, 이중 절반 가량은 계약직이다. 계약직 속기사는 일정한 경력을 쌓고, 자리가 생기면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되고 있으나 속기용역 제도가 도입되면 이들의 정규직 임명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 “속기용역이라는 해괴한 구조조정 광풍이 사법부에도 불고 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최송립 서울지역본부장. 좌측은 정종섭 경기강원지역 본부장
법원노조는 또 기자회견문을 통해 “효율성과 예산절감을 앞세운 구조조정의 광풍이 사법부에도 불고 있는데, 법원행정처가 추진하는 ‘속기용역’과 ‘속기풀제’라는 해괴한 제도가 바로 그것”이라며 “속기용역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법원노조는 “법률지식도 없고, 능력도 검증 안 된 외부 속기업체에 헐값으로 증인신문조서를 맡긴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게다가 업체들의 관리부실로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유출되기라도 한다면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끔찍하며, 부실 재판과 개인정보 유출은 불 보듯 훤하다”고 주장했다.

또 “법원행정처는 속기풀제를 실시해 법원 속기사와 외부 업체의 직원에게 같은 업무를 주겠다는 조치는 수년간 법정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법원 속기사와 정규직이 될 날만 기다리며 밤늦게까지 증인신문 조서를 작성하던 계약직 속기사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노조는 “비정규직 문제로 온 사회가 힘들어지고 있는데, 법원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며 “속기용역화는 구조조정을 동반한 비정규직의 양산을 초래할 것이고,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훼손할 수 있으며, 재판 불신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법원노조는 “법원행정처의 이 같은 발상과 계획은 법원구성원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사법부를 찾는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며 “법원행정처가 공정한 재판을 위해 법원노조와 머리를 맞대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속기용역을 강행한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국민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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