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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판사 “법원직원은 판사를 황제처럼 대해”

“일반직은 대단한 인재로 당장 판사 업무해도 손색없다”

2006-04-29 03:34:19

법원직원을 감금했다고 주장하며 서울남부지법 A판사의 공식사과와 대법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법원공무원노동조합과 ‘전보’로 결론 내린 대법원의 갈등이 급기야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 청사에서 규탄대회로 이어진 가운데 유학 중인 판사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는 글을 법원노조 홈페이지에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글의 주인공은 서울남부지법 판사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또한 수 차례에 걸친 억대의 내기골프 사건에 대해 상습도박죄를 적용한 대법원 판례를 깨고, 무죄를 선고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이정렬 판사.
이정렬 판사는 28일 법원노조 홈페이지에 올린 ‘죄송합니다’라는 A4용지 6장 분량의 빼곡한 글에서 “서울남부지법에서 근무하다가 휴직 중이어서 법원내부게시판을 이용할 수 없어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법원소식을 알 수 있었는데 근래 법원에 중대한 일이 생겨 너무나 안타까워 느낀 바를 말씀드린다”며 글 쓰기 배경을 설명했다.

이 글에 대해 법원공무원들은 30개가 넘는 댓글을 달았는데 “정말 존경한다. 너무 감동 받았다”라는 등의 존경을 표시하며 화답했다.

그는 사법시험합격부터 작년 휴직하기까지의 자신의 이력을 소개한 뒤 “장황하게 이력을 적은 것은 23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28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판사가 된 후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혜택과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음을 말씀드리기 위함”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처음 판사가 된 후 아주 훌륭하고 잘난 사람인 것으로 알았고, 특히 저보다 연배가 높은 계장님, 주임님들께서 저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하던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출세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단독판사 시절 재판 날마다 같이 일하는 계장님, 주임님, 법정 경위님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그 분들은 저를 상석에 앉도록 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또한 일을 하면서 때로는 마찰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그 분들을 심하게 질책했는데도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고만 할 뿐이었다”고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전근을 가게 됐을 때 주임님들께서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 줬는데 말이 도와준 것이지 거의 도맡아 한 모습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저는 왕보다 더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고 어린 나이에 저는 왕으로서 군림하며 즐기고 있었다”며 “전주지법에서 근무할 때는 저를 왕으로 대접해 주는 것도 모자라 황제처럼 대우해 줬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런데 99년 서울중앙지법 판사시절 주임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 민사단독1과에 갔는데 계장님이 송곳을 들고 기록을 만들고 있어 ‘주임님이 할 일을 왜 계장님이 하느냐’고 핀잔 섞인 말을 했더니 ‘우리 재판부 일인데 아무나하면 어떠냐’고 답해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며 “그 때까지만 해도 판사, 계장, 주임의 일이 나누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따지고 보니 어느 누가 해도 관계없는 일이라는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로 기록을 봐야 할 일이 있으면 직접 가지러 가서 보고 기록을 나르기도 하니까 같이 일하는 분들이 항상 미안해했고, 과에 계신 다른 계장님과 주임님들이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훌륭한 판사라는 칭찬을 해 과에 가는 일이 참 즐거웠다”고 소개했다.

그는 “저는 ‘직원’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판사는 직원이 아닌가 하는 반발감이 생겨 싫어하고, ‘일반직’이라는 말도 판사는 무슨 특별하고 특수한 직책인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판사가 계장님들이나 주임님들의 상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재자가 될 자격이 없어 ‘결재’라는 말도 싫어한다”며 이번 서울남부지법 사태에 대해 화제를 돌렸다.

일반직 용어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한 그는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에 판사와 일반직의 관계를 규정한 부분은 없지만 저는 판사와 일반직은 법률상 각자의 업무가 분담돼 있고, 그 관계는 협조 또는 협력 관계이자 분쟁의 해결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해 나가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판사님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다만 그 판사님이 쓴 글 중에서 어떤 생각으로 ‘지시, 지휘·감독, 지도’라는 말을 쓰셨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말씀들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봐 일반직은 지시, 지휘·감독, 지도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시, 지휘·감독, 지도의 대상이라는 것은 결국 부하직원이라는 뜻과 같다”고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판사가 일반직에게 지시, 지도, 지휘·감독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며 “적어도 판사에게 지휘·감독의 대상이 되는 부하직원이 없고, 판사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본 바도 없으며 그런 권한을 행사해 본 바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반직을 부하직원이라는 사고방식은 판사가 왕처럼 떠받들어진데서 비롯됐다고 보면 틀린 생각이냐”라고 반문하면서 “판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번 사건의 원인은 판사님 개인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판사와 일반직의 관계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관행에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은 다른 사람들의 분쟁해결을 주된 업무로 하는 곳인데 요즘 우리 직장은 그 안에서 생긴 분쟁조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안의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갖지 않아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는커녕 우리 직장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조차도 제도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일의 원인은 탄탄하게 구성되지 못한 우리 직장의 뼈대 때문에 생긴 것 같다”며 “그것을 시스템상의 문제, 구조적인 문제라고 표현할 수도 있으며,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미국의 흑백갈등보다 더 심하다는 판사와 일반직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이번 일은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또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아직 재임용도 한 번 받지 않은 성숙되지 못한 판사이고, 나이 마흔도 되지 않은 어린 사람이지만, 감히 판사님들께 일반직은 판사의 부하직원이 아니니 일반직을 보는 눈과 인식을 바꾸자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판사님들이 다른 판사님들을 보면서 다들 뛰어난 분들이라고 생각하듯이 우리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대단한 인재인데 그런 인재들에게 받아쓰기와 송곳질과 같은 기계적인 일만을 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며 “일반직은 지금 당장 판사의 업무를 해도 손색이 없어, 그 분들도 당연히 존경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사건을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제 능력 밖인 것 같아 글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오직 이번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하지만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만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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