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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 교수 사망사건…국가 18억 배상하라

서울고법 “간첩 허위 조작…사실 은폐”

2006-02-14 19:15:17

우리나라 최초의 의문사 사건으로 30년 동안 진상이 은폐됐던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교수 사망사건에 대해 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조용호 부장판사)는 14일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의문사한 고(故) 최종길 교수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조작·은폐 사실을 인정하고 “국가는 유족에게 18억 4848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손해배상 인정금액은 최 교수의 아내에게 5억 1967만원, 아들에게 6억 590만원, 딸에게 4억 1967만원, 형제자매인 나머지 원고들에게 각 5000만원씩 모두 18억 4848만원이다.

이번 판결은 비록 소멸시효가 경과했더라도 국가조직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조작·은폐한 경우 피해자가 진상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서울대 법대교수로 재직 중이던 최종길 교수는 73년 10월 19일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 이에 중앙정보부는 같은 달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 교수가 유럽 유학 중 북한을 왕래하면서 간첩행위를 했고,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을 자백한 후 조직을 보호할 의도로 건물 7층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사자료를 종합해 볼 때 최종길 교수는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사망했거나 ▲고문 등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이를 피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사망했거나 ▲고문 등 가혹행위에 따라 의식불명 상태에 이른 그를 이미 사망한 것으로 오인한 수사관들이 건물 밖으로 던짐으로써 사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중앙정보부가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최 교수의 간첩행위를 인정할 자료가 거의 없었음에도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했다는 내용으로 수사서류를 조작해 허위 내용의 발표를 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칙적으로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청구권은 시효기간의 경과로 소멸했지만, 중앙정보부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함으로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까지는 원고들로서는 사건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으므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돼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번 판결은 지난 30년 동안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의문사 사건인 최종길 교수 사망사건의 사실관계가 법원 판결에 의해 확정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재판부는 특히 “중앙정보부와 같은 거대 국가조직이 서류를 조작하는 등 방법으로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고문 피해자를 오히려 국가에 대한 범죄자로 만든 사건에서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민법)이 지나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예산회계법)이 지나면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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