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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법관 접촉…미국은 징계 vs 한국은 당연시

미국 법조윤리를 통해 본 한국 사법문화의 단상

2005-12-19 15:03:43

미국에서 유학 중인 국내 변호사가 우리 법조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법관과 변호사의 법정 외 접촉은 미국에서는 법조윤리를 위반한 징계대상이라며, 유명무실해진 우리 대법원의 ‘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면담에 관한 행정예규’를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유학 중인 김지홍 변호사는 소속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이 매월 발행하는 ‘뉴스레터’ 12월호에 보내 온 ‘미국 법조윤리시험문제를 통한 미국과 한국의 사법문화에 대한 감상’이라는 글에서 지난달 4일 미국 전역에서 치러진 법조윤리시험 문제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법조윤리를 꼬집었다. 지평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대표변호사로 있어 유명하다.
김 변호사가 예시한 시험문제는 양 당사자가 주장과 입증을 모두 마친 다음 변론을 종결하고 숙의에 들어간 판사가 법률적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원고측 변호사가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변론을 재개해 양측 주장을 보완하게 하는 것이 어떤지 물었고, 판사가 이를 수요해 변론을 재개한 것이 변호사협회 징계대상이 되는지 여부였다.

김 변호사는 “한국의 상식에 비춰 보면 판사가 변론을 재개해 양측 주장을 들은 것이 문제될 게 없어 징계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여 이 같은 명백한 내용을 변호사 윤리가 문제되는 사안이라고 시험에서 제시한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했다”며 “그러나 정답은 놀랍게도 ‘징계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판사에게 연락하려면 미리 상대방 변호사에게도 양해를 구하거나, 상대방 변호사와 함께 해야 한다는 미국 변호사윤리규정과 일방적 접촉이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줄 염려가 없더라도 법관은 당사자 일방과 접촉하는 것을 고려하거나 허락,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법관윤리규정에 위반된다는 것이 근거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도 법관과 변호사의 접촉을 금지하는 규정(‘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면담에 관한 행정예규’)이 있지만 많은 변호사들이 일방적으로 판사와 접촉하는 것을 문제로 느끼지 않아 법관에게 전화는 물론 방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며 “판사 또한 입증에 부족하거나 청구취지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한쪽 대리인에게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혹자는 다른 일방도 법관과 접촉할 기회가 있어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고객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법관을 접촉해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며 또 “변호사들이 법관과 접촉하더라도 법관들은 뛰어난 법률적 소양과 독립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염려가 없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지만 법관과 당사자 일방의 접촉이 재판의 결과를 달리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미국의 사법제도는 적법절차의 준수라는 도덕적 가치가 깊이 뿌리박고 있는데 이런 ‘절차적 정의’가 미국의 사법문화와 한국의 사법문화 사이의 가장 큰 차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변호사는 자신의 고객에게 불리한 판례마저도 재판부에 고지할 의무가 있으며, 고의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경우 실질적 당부에 관계없이 패소당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자백을 받은 경우도 아무리 유죄가 명백하더라도 그 자백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는 미국적 사고방식을 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법관과 당사자 일방의 접촉을 허용하는 것은 이런 절차적 공정성의 전제 자체를 허물어뜨려 버린다”며 “상대방이 어떤 주장과 입증을 했는지 알 수 없다면, 그에 따른 재판 절차가 공정했다고 믿기도 어려우며, 그 결과에 수긍할 수도 없어 일방적인 접촉에서 아무런 편파적 행동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혹을 지우기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법관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주기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은데 이는 변호사들 스스로가 자신을 선전하고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법관과 접촉할 필요성을 과장하면서 자신과 특정 법관과의 관계를 왜곡, 홍보한 탓”이라며 “이런 행동은 당장의 사건이나 고객 확보에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법조인들 모두가 발 딛고 서 있는 ‘사법제도의 권위와 신뢰’를 해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법조계의 근시안을 꼬집었다.

그는 나아가 “이런 행동은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게 하고, 변호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가시키며, 공정한 재판을 통한 분쟁해결이라는 사법제도의 존재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며 “재판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소율의 증가, 분쟁의 미해결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증가할 수 있어 이는 법조인들 내부적인 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손실이 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끝으로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법관과 변호사의 접촉을 엄격히 규제하는 미국 변호사윤리규정이나 법관윤리규정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사법제도개혁위원회에서 이 같은 윤리규정 제정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같은 내용의 행정예규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만큼 규정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규정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그런 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실무를 정착시켜 가는 것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지홍 변호사는 72년 대전 출신으로 대신고를 나와 서울법대를 수석입학했으며, 사법시험 37회에 합격했다. 육군법무관을 거쳐 2001년부터 법무법인 지평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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