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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원 대법관, 진보·개혁적 인사 대법관 등용론에 쓴소리

30일 정년퇴임 “대법관 화려한 커튼 뒤에서 고뇌의 나날”

2005-11-30 18:00:30

배기원 대법관이 30일 정년퇴임하면서 진보적·개혁적 인물이 대법원에 대거 포진돼야 한다는 주장은 보수냐 진보냐의 잣대로 섣불리 법관들을 편가르기 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법관들에게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불릴 만한 판결을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해 결국 사법권 독립의 침해는 물론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또한 국회의원과 같은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균형을 잃은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사법불신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으며, 선망의 자리인 대법관이라는 화려한 커튼 뒤에서 최종적인 법의 선언이라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보수냐 진보냐의 잣대로 섣불리 법관들을 편가르기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배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대법원이 종래 서열인사에서 벗어나 다양화돼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정책법원으로서의 대법원 기능에 비춰 바람직한 일”이라며 “그러나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 대법원을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로만 구성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사회 일각에서 진보적·개혁적 인물이 대법원에 대거 포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데올로기 대결시대가 오래 전에 종언을 고한 마당에 보수냐 진보냐의 잣대로 섣불리 법관들을 편가르기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며, 단편적인 몇 개의 판결만으로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법철학을 재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배 대법관은 “대법원장께서 밝힌 것처럼 법관이 가장 우선 해야 할 가치기준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있을 대법관 임명에서도 일부정치인이나 시민단체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내세우는 몇 몇 법관들이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존경받는 여타 법관들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비춰지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만약 그럴 경우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법관의 사기를 떨어뜨려 일할 의욕과 열의를 잃게 할 뿐만 아니라 법관들로 하여금 사건의 실체에서 벗어나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불릴 만한 판결을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돼 결국 사법권의 독립이 침해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국회의원과 같은 사회지도층 형사재판에서 균형 잃는 게 사법불신의 중요 원인”

또한 배 대법관은 “오늘날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재판간섭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형사재판이나 국회의원 신분이 걸린 재판 등에서 특정사건이 다른 유사사건에 비해 현저히 균형을 잃은 것으로 국민의 눈에 비쳐질 때 국민들은 담당재판부가 필시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거나 그에 영합한 결과일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고 이것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오해한다고 한탄하거나 언론보도가 부정확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재판절차와 결론의 양면에서 한 점의 의혹도 없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 대법관은 “법원에는 칼도 지갑도 없고 오직 공정한 판단만이 유일한 힘의 원천이라고 했는데 법원이 부자의 돈지갑과 권력자의 칼 앞에서나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 앞에서나 똑같이 공평하다고 많은 사람이 느낄 때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존경과 신뢰로 화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법관의 화려한 커튼 뒤에서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냈다”
아울러 배 대법관은 “2000년 7월 인사청문회에서 서민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어야만 법관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얻어질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고, 또한 변호사 10년 넘게 일하면서 체득한 생생한 삶의 현장의 목소리들을 최고법원에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며 “그러나 지난 생활을 돌아보니 이런 포부와 다짐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흔히 대법관을 선망의 자리라고 하지만 그 화려해 보이는 커튼 뒤에서 인간이란 엄연한 한계를 지는 저의 판단이 최종적인 법의 선언이라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냈다”며 “휴가는커녕 퇴근 후나 공휴일도 마음놓고 쉬지 못한 채 오로지 기록 속에만 파묻혀 일한 저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저의 부족한 능력과 식견으로 과연 그 많은 사건을 한 점의 오류도 없이 처리했다고 할 수 있을지 두렵다”며 자세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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