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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앞 ‘소복 아주머니’…실명한 아들 산재 판정 받아내

음독자살 시도 후 식물인간…‘왕따’ 인정 못 받아 억울하다

2005-11-03 02:28:17

업무상 스트레스와 ‘왕따’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으로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뇌 손상과 함께 두 눈을 실명한 아들의 업무상재해 인정을 요구하며 3년째 소복을 입고 회사와 대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온 60대 모정(母情)을 법도 헤아린 것일까. 법원이 마침내 어머니 김종말(63)씨의 한(?)을 풀어줬다.

사건은 이렇다. 김씨의 아들인 N씨는 마산의 명문고등학교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도 명문 S대 경영학과를 나온 수재였다. 졸업 후인 99년 L증권회사에 입사해 일하면서도 증권관련 각종 자격시험을 치르는 등 성실하게 일한 결과 입사 3년만에 대리로 승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1년 3월 다른 부서로 스카우트되면서 ‘왕따’로 인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같은 대학을 나온 동료 팀원들이 다른 대학을 나온 N씨를 따돌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자신이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뤄내는 근성을 지니고 있어 휴일뿐 아니라 연장근무도 감수하며 맡은 업무를 완수하려 노력했으나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데다가 상사로부터 질책도 받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됐다.

여기에 기업공개 제안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중 2002년 8월 자신의 집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퇴원했으나 얼마 못 가 급기야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결국 뇌 손상과 함께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어머니 김씨는 3일 <로이슈>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팀에는 팀장을 비롯해 팀원들은 서울에 있는 S대를 나왔는데 다른 대학을 나온 우리 아들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지 않았고, 동료로서 대우를 해주지 않는 등 왕따를 시켰다. 그래서 견디지 못해 사표를 내고 한의사인 누나 밑에 가서 일하려고 했는데 스카우트된 지 6개월이 안 돼 사표를 낼 경우 팀장이 인사상 감점을 받는다고 말려 사표를 제출하지 못하게 해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시도했다”며 참았던 울음을 흘렸다.

김씨는 이어 “아들은 현재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식사뿐 아니라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려 식물인간과 다름없다”며 “34살 나이에 밥도 못 먹으니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어머니 김씨는 “왕따에 따른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명한 만큼 업무상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산업재해신청을 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3번이나 기각해 결국 법원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그러면서 마산에서 상경해 아들이 다니던 회사의 본사 앞에서 소복을 입고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사법피해자모임을 만들며 대검찰청 앞에서도 1인 시위를 계속해 ‘소복 아주머니’로 알려질 만큼 유명했다.

그러다 지난 8월 김씨조차 대검찰청 앞에서 일몰 후까지 시위를 벌이고, 시위용 현수막을 강제 압수하려는 구청 직원들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 위반)로 구속됐다가 25일만에 풀려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김씨는 “노동자의 엄마가 자식의 권리를 찾기 위해 1인 시위를 한 것인데 교도소까지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나를 미쳤다고 해서 너무 억울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재판과정에서도 순탄치 만은 않았다. 김씨는 “회사측이 장난을 쳐 증인이 불출석 하는 등으로 인해 소송이 22개월 동안 지연됐고 그런데도 법원이 강제출석을 시키지 않아 그 동안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 판사가 2번이나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런 아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어머니의 외로운 법정싸움 그리고 힘겨운 호소를 3년째 벌인 모정을 법도 뒤늦게나마 헤아린 것인지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김병수 판사는 지난달 28일 어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N씨가 내성적이어서 영업부서로 옮기는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를 겪은 나머지 우울증을 얻었고, 그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 점이 인정된다”며 “따라서 자살시도 경위가 업무와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업무상재해를 인정했다.

하지만 김씨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왕따가 아닌 업무 부적응으로 인정된 게 너무 억울하다”며 “대기업 앞에서 법이 솜방망이인데 반해 힘없는 노동자에게 아무것도 아닌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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