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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대법원장 자격론, 부장판사가 부장판사 정면비판

전현직 대법관만이 대법원장 vs 사법부 지켜온 법관들 모욕

2005-08-04 01:09:39

대법원장 임명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고유권한임에도 차기 대법원장 인선을 둘러싸고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법원장 인선기준을 발표하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물론 법원공무원노동조합도 대법원장 후보자를 추천하는 등 법원 안팎에서 청와대를 향한 압박카드가 잇따르며 점입가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라는 글을 언론에 배포하고, 법원노조도 여로 통로를 통해 입장을 표명하자 법원행정처는 자칫 사법부 내부 갈등으로 인한 동요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 명의로 법관과 법원공무원에게 신중한 처신을 당부하는 긴급 서신을 발송하는 등 진화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정진경 부장판사가 최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라는 글과 관련, 3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어느 중견법관의 글을 읽고>라는 글을 통해 “사법부를 지켜온 수많은 법관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정면으로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정진경 부장판사는 법원내 개혁성향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며, 이 모임에는 이광범 광주고법 부장판사, 유승룡 법원행정처 사법제도연구관 등 현직 판사 100여명과 강금실 전 법무장관, 박시환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 등 판사 출신 변호사 2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주목된다.

정 부장판사는 우선 “현직 법관의 의견표명은 책임 없는 시민단체들의 말과는 달리 헌법기관인 법관의 의견표명으로서 사법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자제해 왔다”며 “그런데 중견법관의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라는 글을 읽고 마치 법관 전체의 의견인 것으로 비춰질 소지도 있어 글을 쓰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에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대법원이 다양한 인적구성을 이루어 다양한 사고가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 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어 판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누가 대법원장이 되든 정권의 구미에 맞추어 사법부를 장악할 수는 없을 것이고, 전현직 대법관이 아닌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면 사법부의 독립이 훼손되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금까지 어려운 가운데 묵묵히 사법부를 지켜온 수많은 법관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정 부장판사는 “사법부 수반으로서 대법관 임명제청권과 판사 전체에 대한 임명 보직권이라는 대법원장의 강대한 권한은 대통령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판사에 대한 임명권으로 사법부도 좌우하려고 할 때 의미가 있으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사법행정의 비대화와 판사의 관료화를 촉진하는 부정적인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법원장보다 경력이 앞서는 대법관, 법원장보다 경력이 앞서는 법관이 존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며 “새로운 대법원장은 자신이 가진 권한의 일부를 포기해 하급법원장에게 위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만 대법원장이 임명돼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정 부장판사는 “정권만 바뀌면 사법개혁 이야기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또한 공공기관 중 상대적으로 법원에 높은 신뢰를 보내면서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반문하며 “우리의 사법시스템은 경력법관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국민은 법치보다는 덕치(德治)를 이상으로 삼았던 과거의 영향으로 법관에게 단순한 사법관료 이상의 법창조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사법개혁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전관예우의 폐단과 법관의 연소화문제는 경력법관제와는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국민적 불만의 해소는 현재의 사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사법개혁은 시대의 대세이고 이미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조일원화 및 국민의 사법참여, 대법원의 정책법원화 등에 대해 기본적인 국민적 합의를 이룬 상태”라며 “새 대법원장은 이런 국민적 합의에 따른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사법개혁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이를 이룰 수 있는 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부장판사는 “현재 사법부는 철저히 관료화돼 있고 사법행정이 사법부를 지배하고 있어 판사들에게 재판은 노동이 된 지 오래고, 매일 통계표를 들여다보며 사건과 그리고 동료들과 경쟁하고 있다”며 “과연 현재 법원 내에서 스스로 헌법기관임을 자각하고 판사가 소신과 자부심을 갖고 재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사법부를 겨냥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만난 법원관계자는 판사가 행정만을 해야 한다면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판사들이 재판보다는 법원행정처 근무를 원하고, 일반직들도 총무과나 등기, 호적을 선호해 재판 입회는 가장 인기 없는 보직이 돼 버렸다”며 “인사제도의 합리화 등을 위해 도입한 근무평정제도는 판사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판사 개개인을 하나의 독립된 헌법기관이 아닌 사실상 거대한 법원관료조직의 일부로 왜소화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전현직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고, 전현직 대법관만이 대법원장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견해에도 찬성하기 어렵다”며 “새 대법원장은 저항을 극복하고 앞서 언급한 근본적 사법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인물로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해 사법행정이 재판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도록 해 사법개혁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현직 대법관이든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끝을 맺었다.

◈ 정진경 부장판사 주요약력

정진경 부장판사는 63년 부산출신으로 관악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학교 로스쿨도 연수한 학구파.

89년 대전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수원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올해 2월부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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