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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판사 “소신껏 일하게 법관 다면평가제 도입해야”

법원장에 의한 법관근무성적평정 법관 대부분 불만족

2005-05-20 11:17:38

현직 판사가 법관에 대한 인사관리기준인 법관근무성적평정이 법원장 1인에게만 맡겨져 있어 법관들 대부분이 만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만큼 평가자의 범위를 법원 가족으로 확대시키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서울남부지법 이정렬(36) 판사는 19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법관근무성적평정에 관하여-다면평가제의 도입을 희망하며’라는 글을 올리면서 현재 법원장 1인 평가 시스템인 법관근무성적평정제도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대안으로 법관에 대한 평가자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다면평가제 도입을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정렬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과, 억대의 내기골프 사건 등에서 무죄판결을 내려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바 있다.

◈ 법관 대부분 법관근무성적평정에 불만족

이 판사는 첫머리에서 “종래 법원의 인사 기준이었던 임관성적순 서열제도가 임관성적이 좋지 않은 법관의 경우 아무리 탁월한 업무처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도 서열이 상승되지 않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해 대안으로 법관근무성적평정에 따른 인사관리기준이 마련됐다”며 “그러나 이 역시 대부분의 법관들은 만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이 제도가 내포한 불합리성에 따른 인사기준의 투명성과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법관근무성적평정제도의 불합리성에 관해 크게 ▲‘1인 평가자’의 불합리성의 측면과 ▲평가방법 측면에서의 불합리성으로 나눠 접근했다.

이정렬 판사는 “법관의 근무성적을 평정하는 법원장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의 유지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하나, 그런 점만으로는 평정하는 순간의 ‘평가자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견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심지어 법관들은 ‘법원장에게 밉보여서는 안 된다’거나 ‘굳이 나서서 튈 필요는 없다’는 류의 생각을 은연중 하게 해 소극적 업무 행태로까지 확대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법관근무성적평가의 기준이 화해·조정율, 상소율 등을 비롯한 업무수행에 관련된 통계자료라고 알려져 있어 법관들 중에는 평가자의 사적인 정보수집통로 예컨대 당해 법관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하는 법원 외의 사람(검사 또는 변호사 등)으로부터 얻게 된 정보도 혹 평정에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거나, 통계를 의식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조정회부 하거나, 화해·조정을 무리하게 강요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예를 들었다.

◈ 이른바 성희롱 사건도 법관 평정 제도의 모순 극명하게 보여 준 것

이 판사는 “이 같이 평가자가 1인으로 고정돼 있어 피평가자로서는 심하게 표현하면 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점을 갖고 있고, 이는 재판의 독립성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제도적 허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합의부 소속 배서판사의 경우 법률상으로는 합의부 구성 법관 중 1인이라도 이 같은 평정 방식 및 절차로 인해 합의부 부장판사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상태에 있고, 이는 은연중에 법관의 관료화를 초래·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발생한 이른바 성희롱 사건도 합의부 부장판사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합의부 배석판사의 입장에서 원치 않는 회식자리에 참석했다가 일어났다”며 “이는 법관근무성적평정제도가 예상하지 못했던 제도의 결점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으로 평정 제도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 법원 인화 해치고, 업무수행의 하향평준화 위험성도 내포

평가방법에 대해서도 이정렬 판사는 “평정 제도가 소속 법관들 사이의 상대평가로 A, B, C 등의 등급으로 결과를 산정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우연한 사정에 의해 같은 법원에 근무한 법관들 사이에서 상대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서, 동일한 수준의 업무성과를 이뤘더라도 피평가자가 속한 법원에 같이 근무하고 있는 법관들의 수준에 따라 평정결과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더 나아가 법원에서 평정을 받은 법관이 모두 퇴직한 경우 법관근무성적을 사용할 때에는 그 법원에 A평정을 받은 법관이 하나도 없게 돼 이를 해결하기 위해 C평정을 받은 법관의 평정을 B로 상승시키거나 최소한 당초에 받았던 성적 이상으로 상승시키는 복잡다단하고 불필요한 추가 작업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또한 “평정 결과가 계량화되지 못해 피평가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사유로 인해 자신이 당해 등급의 평정을 받게 된 것인지 승복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판사는 특히 “상대평가제는 동료 법관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에 대한 평정이 이뤄지는 것이어서 자칫하면 동료 법관이 경쟁상대로 인식하게 돼 법원 전체의 인화를 해치고 더 나아가서는 업무수행의 하향평준화를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성도 갖고 있다”며 “(실제로) 미제 사건보다 월별 처리 건수가 중요시되는 요즘 동료 법관 사이에 미제사건이나 월별 처리 건수, 화해 조정 건수 등에 관한 미묘한 신경전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 참여사무관, 법정경위, 속기사, 사무원까지 평가자로 확대해야

이정렬 판사는 이런 평정의 불합리한 이유를 들며 대안으로 다면평가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 판사는 ““법원장이 법관의 재판진행 등 업무수행상황이나 조직장악능력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물리적, 제도적 상황 하에서의 평정보다는 법관이 행한 재판의 상소심을 담당한 법관, 피평가 법관과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동료 법관 및 함께 재판을 진행하는 참여사무관, 주임, 법정경위, 속기사, 사무원까지 가능한 한 평가자의 외연을 확대하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평가자의 외연을 법원 가족 전부로 확대할 경우 평가행위가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 있는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평가자의 범위를 예를 들어 민사담당 법관의 경우 민사고 소속 법원가족으로 한정시키는 방법이나 피평가 법관과의 업무관련성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평가자의 외연을 확대하는 경우 피평가자인 법관은 자신에 대한 평가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실제 평가자를 의식할 필요도 없게 되어 그야말로 법률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판사는 끝으로 “조직인사권은 장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지만 인사권자라도 자의적인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며 “따라서 법관에 대한 평정을 법원장에게만 맡겨 두는 것보다는 평가자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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